“이게 킬러” 고난도 지문 등 26개 문항…선정 기준엔 ‘갸웃’
국어·영어 난도 높은 지문…수학선 대입 수준 개념 결합형
EBS 교재 연계 국어 정답률 36.4%…‘킬러’ 정의 자체 모호
중간 난도 문제 늘어날 전망…“9월 모의평가로 짐작 가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공정한 수능’을 지시한 뒤 논란이 된 이른바 ‘킬러 문항’의 실제 사례를 교육부가 26일 공개했다. 고등학생 수준에서는 어려운 지문이 나온 국어 문제, 과도하게 많은 개념을 사용하거나 대학 수준 개념을 알면 쉽게 풀리는 수학 문제 등이 예시로 꼽혔지만 수험생과 학부모의 궁금증은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교육부가 내놓은 킬러 문항의 정의 자체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또 ‘높은 수준의 추론이 필요한 문제’ 등 추상적인 표현을 킬러 문항의 근거로 제시하고, EBS 연계 문항을 킬러 문항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이날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지난 6월 모의평가와 지난 3년간 수능에 출제된 킬러 문항 26개를 공개했다. 과목별로는 국어영역 7개, 수학영역 9개, 영어영역 6개, 과학영역 4개였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으로 정의했다.
수학에서는 여러 개념을 결합해 과도하게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문항이 다수 출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특정 선택과목이나 대학에서 배우는 개념을 학습한 학생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항이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다. 예컨대 2023학년도 수능 수학 22번은 미적분을 배우지 않은 학생은 매우 복잡한 풀이를 거쳐야 하지만, 이과생들이 주로 배우는 미적분을 선택한 학생은 ‘변곡점’ 개념을 활용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국어와 영어는 ‘난도 높은 지문’이 출제된 문항이 주로 꼽혔다. 국어에서는 고등학생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문과 전문용어를 사용해 배경지식을 가진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게 풀 수 있는 문항이 킬러 문항으로 분류됐다. 문제 풀이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내용 파악을 어렵게 하는 문항, 선택지의 의미와 구조가 복잡해 의도적으로 실수를 유발하는 문항도 킬러 문항이라고 했다. 영어는 내용이 전문적이거나 추상적이라 해석을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항, 지문이나 선택지의 문장이 과도하게 길고 복잡한 문항 등이 지적받았다.
교육계 인사들은 대부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킬러 문항 배제 자체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교육부가 제시한 킬러 문항의 기준이 모호하고 자의적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교육부는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조지훈의 시 ‘맹세’와 오규원의 시 ‘봄’이 제시문으로 나온 국어영역 문학 문제에 대해 “제한된 감상 정보에 의지해 각 선택지가 제시하는 내용을 작품 안에서 찾아야 풀 수 있는 문제”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의미 해석을 위한 높은 수준의 추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문항에 대한 설명에서도 ‘추론해야 할 정보량이 과다함’ ‘추론의 난도가 높음’ 등의 설명이 반복됐다.
교육부는 또 킬러 문항에 관한 태도가 바뀐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수능 때마다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했다고 설명했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9학년도부터 개별 수능 문제의 교육과정 근거를 공개해왔다.
EBS 연계 출제로 수험생들에게 익숙한 지문을 킬러 문항이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올해 6월 모의평가 국어 14번으로 나온 철학 관련 지문은 EBS 교재에 있었지만 교육부는 “낯선 현대철학 분야의 전문용어를 다수 사용해 지문 이해가 어려웠다”며 킬러 문항으로 분류했다. 평가원은 수능과 모의평가의 정답률을 공개하지 않지만, EBS가 운영하는 EBSi 기준으로 이 문항의 정답률은 36.4%였다.
올해 수능에서는 교육부가 킬러 문항으로 제시한 것과 유사한 문항은 줄고 중간 난도 문항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교육부는 국어와 영어는 지문 자체가 어렵고, 수학은 문제 풀이 단계가 지나치게 복잡해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하다고 보는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추가로 변별력을 어떻게 확보할지는 9월 모의평가를 통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 현장에서는 킬러 문항이 줄어든다고 해도 수능의 영향력이 감소하지 않는 한 사교육이 줄지는 않을 거란 반응이 나온다. 전남의 한 고등학교 국어 교사는 “9등급제 상대평가 체제를 계속 가지고 간다면 이 안에서는 어떤 다른 제언을 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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