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킬러 속성반” 한술 더 뜬 대치동…“수능공부 어떡하지” 수험생 걱정

한상헌 기자(aries@mk.co.kr), 김정석 기자(jsk@mk.co.kr) 2023. 6. 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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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에 학원안내판이 붙어있다. [김호영 기자]
“교재에서 우선 ‘킬러’라는 단어만 뺐습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등 일대에서 7년째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 모 강사는 “학원은 설명회를 준비하는 한편 홍보 문구를 검수해 홍보물을 다시 제작하는 중”이라며 “학생들에게는 9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보면 수능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있으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26일 찾은 사교육 일번지이자 정부로부터 ‘사교육 카르텔’의 주범으로 꼽힌 대치동은 대응책 마련으로 부산한 모습이었다. 사교육 대책의 일환으로 수능에 ‘킬러 문항’이 제거된다고 했지만, 이같은 정책이 앞으로 있을 모의고사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의문인 상황때문에 여전히 학부모와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대치동 학원가는 킬러 문항 대신 ‘준킬러 문항’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으며, 속속 입시설명회나 개인 상담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과 불안감을 파고드는 모습이었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수험생 입장에선 수시 상담 등 입시 상담이 빈번하게 벌어져야 할 시기에 어수선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학원가에선 최근 논란이 되는 ‘킬러 문항’에 대해 발 빠르게 흔적을 지우면서 새로운 마케팅에 돌입했다. 유명 인터넷강사들은 문제집에서 ‘킬러’라는 표현을 삭제하거나 앞다퉈 광고 문구 등을 없애고 있다. 실제로 여러 인강강사는 강의명에 들어간 ‘킬러’ 대신 다른 표현을 사용해 자체검열에 나섰다. 강사들은 킬러 문항 관련 커리큘럼을 수정하거나 없앴다. 대신 킬러 문항 대신 ‘준킬러 문항’이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준킬러 문항’과 ‘비킬러’ 등의 표현을 사용한 다양한 마케팅이 이뤄지고 있었다.

대치동 학부모들은 수능을 5개월 앞두고 사교육 단속에 다선 정부의 행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다. 강남구에서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키우고 있는 40대 학부모 김 모씨는 “6월 평가원 모의고사까지 끝났는데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수능 기조를 바꾸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며 “주변 학부모들 모두 한목소리로 교육부를 성토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부가 ‘사교육 이권 카르텔’ 집중신고를 받기 시작한지 사흘만에 마흔 건이 넘는 신고가 접수됀 가운데 정부의 단속 강화 움직임에 맞춰 ‘킬러문항’ 배제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교육부는 오늘(26일) 오후 킬러문항 사례를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은 26일 대치동 학원가.2023.06.26 [이충우기자]
강남구의 학교들은 킬러 문항이 없어지면서 변별력 논란이 불거지자 앞으로 공부나 입시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교사를 맡은 A씨는 “킬러 문항이 없어지면서 수능의 변별력이 줄어들 수 있으니 내신 성적에도 집중하라고 당부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역시 대통령의 ‘공정 수능’ 지시로 인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치동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3학년생 이 모군은 “우선 시험에 집중하려고 한다”며 “수능이 몇 달 안 남아서 당황스럽다” 며 “열심히 한다면 결국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수험생들은 이번 혼란에 크게 불만을 드러내며 온라인에서 활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한 수험생 모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현 지침을 철회하거나 관행을 준수해 서서히 시행해달라, 교육 정책을 일방적이거나 졸속적으로 추진하지 말아 달라”며 “교육 정책은 전문가·출제기관·학생 등 당사자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쳐 충분한 기간을 두고 연구하고, 발표 시 내용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동의청원에 수능 관련 청원도 등장했다. 지난 21일부터 시작한 청원에서 글쓴이는 정부에서 수능의 난도와 범위에 대해 갑작스러운 변화를 요구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은 공개된 지 약 5일 만에 6000명 넘게 동의한 상태다.

교육부가 대학별고사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대학들도 긴장한 모습이다. 대입 수시평가의 공정성 강화로 인한 조치로 대학별고사가 교육과정 수준이나 범위를 벗어났는지 여부를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따로 대학에 내려온 상황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며 “(이후 교육부에서) 공문으로 내려올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 교사들은 ‘킬러 문항’으로 인한 사교육 유발 효과를 억제해야 하는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학교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적용될 수 있게 정책이 잘 안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종 과학예술영재학교에 근무하는 이정환 수학교사는 “수업시간에 다루는 문제들은 학생들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킬러문항은 학교 수업에서 다루기 부적절하다”며 “학교 내에서 킬러 문항을 다뤄줄 수가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사교육 현장에서 킬러 문항의 변형 문제와 다른 비슷한 문항을 풀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 공교육과 괴리가 벌어지는 이유라 킬러문항 배제의 큰 방향은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사는 “사교육 시장은 결국 변형된 모습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며 “부모의 교육열이 사교육 시장의 원인이면 이를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전직 고등학교 국어 교사 B씨는 “교육과정상 다루는 여러 가지 독서나 읽기를 가르치더라도 텍스트 난이도라든지, 사고 능력이라든지 이런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일부 수능에 출제된 킬러 문항은 교육부 입장과 동일하게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B씨는 “문항을 풀 때 수험생들의 여러 가지 전략이 개입되고 모든 문항의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며 “아무리 역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텍스트 난이도가 학생 수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사고력이 발현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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