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먹방과 단식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하면 닭·오리고기 소비가 위축된다. 가금류 사육농가와 식당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럴 때면 공무원의 릴레이 삼계탕 시식회가 열린다. 정부·공공기관 구내식당 메뉴에 등장하고, 공무원 수백명이 단체회식에 나선다. AI 바이러스는 75도에서 5분, 100도에서 몇초면 사멸된다. 적절하게 조리하면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혹시나 건강에 영향이 없을지 걱정하는데, 이를 괴담이라고 하진 않는다.
국민의힘이 연이어 ‘먹방’을 찍고 있다. 당 지도부가 수산시장 횟집에서 식사하고, 26일에는 경북 성주에서 참외를 먹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괴담·공포 마케팅으로 수산물 소비가 줄어들었기에 회 먹방으로 안전성을 입증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구상이다. 또 야당이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시 전자파가 성주 특산물인 참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괴담을 퍼뜨렸으니 참외 시식으로 오염수 괴담까지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여당과 정부 관계자들이 수산물을 먹어 국민을 안심시키고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80%가 넘는 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을 누그러뜨리고 싶은 절박함도 느껴진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지 않았다. 오염수 방류 이전 먹방은 방류 이후에는 의미가 없다. 먹방은 과학이 아니다.
국민 우려를 키우는 것은, 일본 어민들도 반대하는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걱정을 괴담으로 치부하며 손 놓고 있는 정부의 무기력·무대응·무대책이다. 정부·여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먹방 퍼포먼스가 아니라 “지금은 괜찮다. 마음껏 드시라. 오염수 방류로 걱정하지 않도록 일본에 분명하게 얘기하고 최선의 대책을 세우겠다”는 말과 행동 아닐까.
윤재갑 민주당 의원에 이어 같은 당 우원식 의원과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이날 오염수 방류 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여야의 진영 정치는 오염수 방류 문제에서도 먹방과 단식으로 극명하게 대치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린다면 일부러 먹지 않아도, 굶지 않아도 될 일이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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