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공교육 정상화·사교육 경감 대책, 학교 바깥 환경도 주목해야
(서울=연합뉴스) 정부가 사교육 없이도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육부는 26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소위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없애고 공공 입시상담 등을 통해 학생들이 공교육 안에서 입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의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변별력은 갖추되 공정 수능 평가 자문위원회와 공정 수능 출제 점검위원회를 통해 킬러 문항을 철저히 걸러냄으로써 학교에서 성실하게 공부한 학생들이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현장 교사 중심의 무료 대입 상담도 확대할 예정이다. 개념이 모호했던 킬러 문항의 예시도 공개했다. 2021~2023학년도 수능과 올해 6월 2024학년도 모의고사에서 출제된 국어, 영어, 수학 문제 22개가 대상이다. 교육부는 고차원적인 접근 방식, 추상적 개념 사용, 과도한 추론 필요 등을 이유로 들었는데 한눈에도 고교 교과과정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다. 이와 함께 '영어유치원'의 편법 운영을 단속하고 '초등 의대 입시반'의 실태를 점검하는 한편 늘봄학교를 확대하고 만 3∼5세 교육과정(누리과정)을 개정해 유·초등 사교육 수요도 줄일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한 이후 이와 관련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고교 학점제 2025학년도 전면 시행,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학업성취도 평가 확대,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 유지 등을 골자로 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이 발표됐다. 교육부는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까지 개설했다. 지난 24일까지 40건의 신고가 접수됐는데 대통령실은 "사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면 그 부분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공교육을 바로 세우고 사교육 수요를 대폭 줄이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읽힌다. 공교육 정상화의 필요성과 시급성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사안이다. 연간 사교육비가 무려 26조 원에 이르고 있으니 일반 서민은 물론 중산층도 허리가 휠 지경이다. 돈이 없으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입시 구조는 학력과 부의 대물림으로 국가의 건강성까지 해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교 이하 교육이 대학 입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수능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교육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백년대계인 교육 문제를 너무 급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능을 5개월 앞두고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독선과 독단으로 대입 수능이 대혼란에 빠져 있다"면서 4년 전에 해야 하는 수능 예고제를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불특정 다수에 피해를 주면서 초과 이익을 취하는 것은 범죄이고 사회악"이라면서 이를 바로 잡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반박했다.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지만 시점에 대해서는 여야의 시각차가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이번에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어떻게 시험에 대비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단기 대책을 구분해 일단 올해 수능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한편 장기적인 교육 정책의 비전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차분히 다듬을 필요가 있다. 교육을 둘러싼 사회 환경에도 주목해야 한다. 입시 제도를 수없이 바꿨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근본 원인이 학교 바깥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학벌 위주의 사회, 직업·직종별 임금 격차, 물신주의는 사교육 시장의 좋은 자양분이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학벌을 위해 노후까지 희생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젊은이들이 왜 결혼이나 출산을 주저하는지 깊이 들여다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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