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초점] 또 여행 예능? '태계일주2', 무모함이 주는 대리 만족 통했다

최보란 2023. 6. 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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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 [MBC 제공]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가 여행 예능 트렌드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TV에서는 여행 예능이 범람하고 있다. 시청자의 여행에 대한 욕구와 관심도 상승하고 있는 시점이지만, 여행을 소재로 한 예능이 너무 많고 최근에는 유튜브 등에서 더욱 생동감 넘치는 현실 밀착형 여행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그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KBS 2TV '걸어서 환장 속으로', KBS 2TV '배틀 트립', tvN '부산 촌놈 in 시드니', JTBC '뭉뜬리턴즈', SBS '수학 없는 수학여행', ENA '지구마불 세계여행' 등 여행을 주제로 하거나 해외로 떠나는 콘셉트의 예능이 쉼 없이 등장하고 있지만, 지상파와 케이블을 막론하고 시청률은 1~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1일 방송을 시작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이하 '태계일주2')가 주목받고 있다. '태계일주2'는 첫 회 시청률 4.7%로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으며, OTT 통합 랭킹 1위에 오르는 등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반응을 끌어냈다. 입소문에 힘입어 18일 방송된 2회는 5.8%를 기록했는데, 이는 이전 시즌의 최고 시청률인 5.2%보다 높다. 25일 방송된 3회 시청률은 5.4%였다.

'태계일주2'는 프로그램은 제목 그대로 태어난 김에 떠나는 기안84의 세계일주를 보여주는 여행 프로그램. 지난 시즌1 남미 여행기가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으며 시즌 2, 3 제작을 확정했다. 이번 시즌2에서는 기안84와 빠니보틀에 이어 덱스가 새롭게 합류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나라 인도 여행기를 펼치고 있다.

기존 여행 예능은 정보를 중요하게 다뤘다. 현지의 명소 혹은 맛집 탐방 등으로 관광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전달했다. 예능으로서 재미를 보완하기 위해 더 적은 금액으로 가성비를 높인 여행 코스라든가, 같은 여행지를 테마 별로 다르게 즐긴다는 식으로 대결 구도를 더했다. 이후 아예 한 곳에 정착해 장사를 하면서 현지에서 몇 주간 살아보는 방식의 예능도 인기를 끌었다.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만큼 공감을 얻은 유튜버들의 현실감 넘치는 여행기를 방송으로 옮긴 형식도 등장했다.

여행 예능이 꾸준히 인기를 얻으면서 다양한 변주를 보여줬는데, '태계일주2'는 아예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다. 팀을 나눠 대결을 하지도 않고, 웃음을 위해 제작진이 제시한 미션도 없다. 그저 출연자에 모든 것을 맡기는데, 그 출연자가 아무런 준비도 (심지어 숙소 예약도) 하지 않는 무모함을 보여준다. '모 아니면 도'가 될 것 같은 이 여행은 의외의 매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고, 어느덧 시즌2 방송이 이어지고 있다.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 [MBC 제공]
프로그램의 원동력은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라는 별명을 가진 기안84다. 10여 일의 해외 여정인데 그의 짐은 작은 가방 하나뿐이다. 여행의 시작점과 최종 목적지만 정해져 있고 어디로 가서 무얼할지는 전적으로 기안84에게 달렸다. 카메라는 출연자의 선택에 따라 함께 이동할 뿐이다. 모든 것이 즉흥적인데, 기안84의 실수로 인해 의도치 않게 현지 생활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부부의 여동생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예상치 못하게 현지 결혼식 문화를 생생하게 담기도 한다.

이 같이 과감한 프로젝트는 제작진과 출연진 간의 깊은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기안84와 인연을 맺은 김지우 PD는 촬영을 하면서 봐 온 그의 꾸밈없고 거침없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 이후 친분을 쌓게 되면서 여전히 대중들이 잘 모르는 매력이 있다고 보고 이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 여행을 떠올렸다. 기안84 또한 평소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던 김 PD였기에 새로운 도전을 향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전무후무한 예능 캐릭터라도, 시청자의 이해가 없이는 이 좌충우돌 여행이 사랑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MBC는 '나혼자산다'를 통해 웹툰 작가인 기안84를 일찌감치 발굴, 그 안에 숨겨진 예능 캐릭터를 끌어내 시청자에게 소개해 왔다. 커피 포트에 라면을 끓여 먹고 화장실에서 가위로 직접 머리를 자르는 그의 자연인 같은 모습이 이미 익숙한 시청자에게 이번 여행은 기안84다운 여행이고, 그가 아니라면 감히 해낼 수 없는 여정이다.

이전 여행 예능은 일상을 벗어난 유유자적한 삶을 통한 힐링에 집중했다. 유려한 경관을 보고 감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출연자의 모습도 빠지지 않았다. '태계일주2'는 여행 예능이 추구해 온 대리만족을 다르게 해석했다. 생고생을 자처하는 출연자의 모습을 담으며 전혀 반대의 길을 선택, 한 번쯤 상상해 보지만 선뜻 나서기 어려운 무계획 여행으로 의외의 호응을 얻고 있다. 안전한 길을 거부한 대신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된 기안84의 여행처럼, '태계일주2'는 기존의 수식을 벗어난 용단으로 여행 예능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됐다.

YTN 최보란 (ran61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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