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준의 돈 이야기 <24>] 달러는 언제부터 달러였을까…북미 달러의 기초, 스페인 탈러
16세기 독일의 국경 지대인 요아힘스탈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됐다. 사실 16세기 유럽에 독일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속국으로서 수백 개의 지방국으로 분열된 조각보 같은 나라들만 존재했다. 독일어를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는 공통점도 없었다. 요아힘스탈에서 만들어진 은화는 순도가 매우 높아서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유럽인은 이 지역에서 주조된 은화를 요아힘스 ‘탈러’라고 불렀고, 이후 영국인은 이것을 간단하게 ‘달러’라고 발음했다.
탈러가 인기가 많아지자 유럽 전역에서 탈러를 모방한 은화가 주조됐다. 가장 유명한 모방품은 오스트리아 탈러였는데, 황후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 테레지아 탈러라고 불렀다. 이 탈러는 비교적 최근인 1975년까지 약 8억 개가 주조됐다. 하지만 이 주화의 발행 연도는 모두 1780년으로 표시돼 있다.
스페인 탈러도 존재했다. 그것은 8헤알의 가치가 있었다. 따라서 8조각(8페소)이라고도 불렸다. 헤알(real)은 왕(royal)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로써 스페인의 화폐단위를 의미한다. 당시에는 국왕만 화폐를 주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헤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헤알은 순은 1온스(약 3.2g)로 주조됐다. 17세기 네덜란드인이 북미 대륙의 뉴 암스테르담(뉴욕)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라이히(신성로마제국) 탈러를 유통했다.
하지만 18세기가 되자 스페인의 8헤알짜리 은화가 북미 대륙을 석권하면서 스페인 탈러가 진정한 국제통화로 자리 잡게 됐다. 스페인 탈러는 스페인, 멕시코, 페루에서 주조됐고 북미 대륙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됨으로써 오늘날 미국 달러, 캐나다 달러의 기초가 됐다.
미국 헌법과 탈러
미국 헌법에는 특이하게도 화폐에 관한 규정이 있다. 그 하나는 “연방의회는 화폐를 주조할 권한(to coin money)을 갖는다”이고, 또 하나는 “연방의회는⋯1인당 10달러(dollar)의 범위에서 입국세를 부과할 수 있다”이다. 그렇다면 1789년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은 달러를 미국 화폐의 기본단위로 정해놓았던 것일까? 왜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은 화폐를 발행(issue)한다고 하지 않고 주조(coin)한다고 규정한 것일까.
미국 헌법에서 말하는 달러는 당시 미국에서 사실상 유통되고 있던 스페인 탈러를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 헌법은 예외적으로 외화의 법화성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화폐를 주조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 당시 화폐는 귀금속을 녹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 형태의 달러는 무엇인가. 물론 당시에도 지폐는 존재했다. 지폐의 공식 명칭은 그때나 지금이나 은행권(bank note)이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모든 상업은행이 자신의 신용으로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었고, 은행권은 금, 은의 지급청구권을 표시한 약속어음이었다. 이러한 흔적은 오늘날 영국의 파운드화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영란은행은 은행권 소지인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합계 ○○를 지급할 것을 약속한다(I promise to pay the bearer on demand the sum of⋯)”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달러, 탈러를 카피하다
물론 탈러의 미국판도 존재한다. 최초의 미국 달러는 1794년 미국 조폐국이 스페인 탈러를 모방해 은화의 형태로 주조했다. 이러한 은화 달러는 1873년 미국이 금본위제로 이행할 때까지 공식 화폐로 사용됐다. 은화 달러의 한쪽에는 독수리가 새겨져 있고 다른 쪽에는 인디언(자유의 여신이라는 설도 있지만 왕관과 횃불이 없다)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새겨져 있다. 특이하게도 액면가는 표시돼 있지 않다. 왜냐하면 미국 달러가 스페인 탈러의 카피이고, 8헤알(8온스)의 가치를 지녔다는 사실은 북미 대륙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의 화폐들과 달리 미국 달러는 십진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헌법의 평등주의와 민주주의를 화폐제도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국의 화폐단위는 1파운드=20실링, 1실링=12페니로 상당히 복잡한 반면, 미국의 화폐단위는 1달러=10다임, 1다임=10센트, 1센트=1밀로 간명하다. 달러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밀이 실제로 발행된 적은 없다. 참고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주화에 자신의 이미지를 새겨 넣는 것에 반대했다. 영국 군주의 틀에 자신을 끼워 넣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와 꼬리
영미권에서는 주화의 앞면을 머리(head)라고 부르고, 뒷면을 꼬리(tail)라고 부른다. 축구에서 주심이 선공하는 팀을 결정하기 위해 동전 던지기를 하면서 양 팀 주장에게 머리와 꼬리를 선택하도록 하는 장면은 TV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주화의 머리는 국가적 권위를 상징하고, 주화의 꼬리는 물질적 가치를 나타낸다. 주화의 머리와 꼬리는 태생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회피할 수 없는 긴장 관계는 복본위제가 도입되면서 더 복잡해졌다.
복본위제는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함께 사용하는 화폐제도다. 여기서 본위란 화폐의 기준을 의미한다. 왜 복본위제를 사용했을까. 금은 매우 희소했고 그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부자와 귀족들이 독점하고 있었고, 은은 상대적으로 풍부하면서 가치가 낮았기 때문에 농부와 노동자들이 널리 사용했기 때문이다.
건국 초기부터 미국에서는 이러한 화폐적 긴장 관계가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권력의 집중화에 반대한 토머스 제퍼슨은 “복본위제에 근거해 미국의 화폐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1792년 미국 주화법에서는 ‘1달러는 순은 371.25그레인(24.1g) 또는 순금 23.22 그레인(1.5g)’이라고 정의돼 있다. 무게를 기준으로 평가할 경우 금은 은보다 16배의 가치가 있었다.
황금 십자가와 ‘오즈의 마법사’
미국 내전(1861~65)에서 승리한 북부연합은 남부 지역의 경제적 종속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내전을 승리로 이끈 북부의 줄리어스 그랜트 장군이 대통령 재임에 성공하면서 공화당 정부는 금본위제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은본위제를 폐지하면 남부 지역에 경제적 타격을 가해 공동시장의 형성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873년 미국 공화당 정부는 금본위제로 이행하기 위한 예비적 조치로 은화 달러의 생산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미국 내 통화 공급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미국 정부가 스스로 초래한 화폐 부족은 심각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불러일으켰다. 디플레이션이란 물건 가격이 하락하고 화폐가치가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디플레이션은 단순히 물가를 하락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경기침체와 실업을 동반한다.
이런 정부 조치에 대해 정치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금본위제는 미국 인민을 황금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북미 대륙을 격렬한 정치적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
이러한 브라이언의 주장은 소설가 프랭크 바움에게 문학적 영감을 불어넣었고 ‘오즈의 마법사(1900년)’라는 불멸의 소설을 낳게 만든다. 현대인은 ‘오즈의 마법사’를 아동용 동화로 알고 있지만, 원래는 심각한 정치 풍자소설이었다. 소설에서는 허수아비, 깡통 나무꾼, 겁쟁이 사자가 도로시와 힘을 합쳐 동쪽마녀와 서쪽마녀를 물리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사악한 마녀들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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