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와인 <42> 할리우드 스타가 만든 연한 핑크빛 로제 와인] 브래드 피트가 선택한 프로방스 와인, 부드러운 매력 속으로
필자에게 브래드 피트는 그저 몹시 잘생긴 할리우드 배우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적어도 그가 샤토 미라발(Chateau Miraval)의 오너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유명인이 와이너리에 투자하는 일은 종종 있다. 그런데 피트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다. 그는 상품 기획은 물론 테이스팅까지 함께할 정도로 와인에 진심이다. 그것도 유독 로제 와인에 집중된 사랑이다. 그가 만든 와인들은 품질이 뛰어나서 로제 와인 중에서도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인 영화배우인 그가 와인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그의 와인들은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증이 폭발한다.
佛 와이너리 ‘샤토 미라발’ 소유한 브래드 피트
샤토 미라발은 상당히 긴 역사를 자랑한다. 미라발이 위치한 곳은 지중해와 가까워 풍광이 아름답고 기후가 온화해 로마 시대부터 포도 재배가 활발했다. 그래서인지 명사들에게도 인기가 높아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와 나폴리의 왕자 등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70~80년대에는 재즈 피아니스트 자크 루시에(Jacques Loussier)가 이곳을 소유했는데, 그는 와이너리 안에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작업실로 활용했다. 퀸, 스팅, 엘튼 존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들이 미라발 스튜디오를 이용했고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더 월(The Wall)’도 이곳에서 탄생했으니 샤토 미라발은 와인뿐만 아니라 팝 음악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피트가 처음 샤토 미라발을 임대했을 땐 굳이 살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3년간 별장으로 이용하면서 미라발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2012년 6000만달러(약 780억원)라는 거금을 주고 이곳을 매입했다. 그리고 함께 와인을 만들 파트너를 물색했는데, 그 상대가 바로 파미유 페랑(Famille Perrin)이었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페랑은 5대째 와인을 만들고 있는 가문으로 샤토 드 보카스텔(Chateau de Beaucastel)이라는 명품 와인을 생산하는 대단한 실력파이기 때문이다. 피트와 페랑이 함께 만든 미라발 로제는 출시되자마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고 이듬해인 2013년에는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가 선정한 100대 와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샤토 미라발이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훌륭한 품질을 선보일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프로방스라는 천혜의 환경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포도를 기르니 재료부터 품질이 최상급이고, 여기에 페랑의 노하우와 피트의 감수성이 더해져 차별화된 와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에도 프랑스의 ‘르 피가로(Le Figaro)’ 매거진이 샤토 미라발을 프로방스에서 가장 우수한 와이너리로 선정한 것을 보면 까다로운 프랑스 전문가들도 미라발 로제의 품질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샤토 미라발이 만든 로제 와인 중에 국내에 수입되는 것은 미라발 로제와 스튜디오 바이 미라발 두 종이다. 두 와인 모두 프로방스 로제 특유의 연한 핑크빛이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질감과 긴 여운에서는 명품의 기품이 느껴진다. 가장 좋은 포도만 골라 만든 미라발 로제는 야생 베리의 신선함이 가득하고 은은한 장미 향이 고급스러움을 더하며,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을 기념해 만든 스튜디오 바이 미라발은 레몬, 자몽, 무화과 등 과일 향이 상큼하고 짭짤한 미네랄 풍미가 입맛을 돋운다.
모든 것이 남다른 로제 샴페인, 플뢰르 드 미라발
피트의 로제 사랑은 프로방스에서 끝나지 않고 샴페인으로 이어졌다. 이 프로젝트에는 파미유 페랑과 함께 샴페인의 거장 로돌프 페테르(Rodolphe Péters)가 참여했다. 무려 5년이라는 긴 연구 끝에 세상에 내놓은 와인은 바로 플뢰르 드 미라발(Fleur de Miraval), 세계 최초의 로제 샴페인 전문 브랜드다. 로제만 고집하는 것도 특이하지만 이 샴페인은 양조 방식도 독특하다. 그랑 크뤼(Grand Cru·최고 등급) 밭에서 생산한 샤르도네 와인 50%에 오랜 기간 숙성시킨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샤르도네 100%) 샴페인 25%와 신선한 피노 누아 로제 와인 25%를 블렌드해 만든다. 처음부터 샴페인으로 만들어서 오래 숙성시키는 경우는 흔하지만 애써 숙성시킨 샴페인을 새로 만든 와인에 더해 깊은 풍미를 도모하는 것은 플뢰르 드 미라발이 최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지 말자’는 의지를 공유하며 피트와 와인계의 거장들이 환상적인 팀워크를 발휘해 만들어 낸 남다른 결과물인 것이다.
플뢰르 드 미라발은 여러 해의 와인을 섞어서 만들기 때문에 빈티지가 없다. 대신 번호가 붙는데 2020년에 첫 출시된 ER1을 시작으로, 2021년에는 ER2, 2022년에는 ER3가 생산됐다. 여기서 ER이란 ‘Exclusively Rose’라는 뜻이다. 생산량이 2만 병 정도로 워낙 적어 ER1은 이미 품절됐지만 ER2와 ER3는 국내에 소량 수입됐다. 2017년산 샤르도네 와인에 2004년산과 2006년산 샴페인으로 풍미를 더한 ER2는 레몬, 자몽, 복숭아 등 상큼한 과일 향과 함께 홍시, 브리오슈, 아카시아의 감미로움이 풍부한 아로마를 구성한다. 2018년산 샤르도네 와인에 2000년산과 2009년산 샴페인이 블렌드된 ER3는 귤, 살구, 오렌지, 앵두 등 신선한 과일 향에 은은한 꽃 향이 우아함을 더하고 탄탄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두 와인 모두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지만, 아로마가 풍성한 ER2는 불고기나 매콤한 한식과 즐겨도 좋고 풍미가 섬세한 ER3는 회나 해산물에 곁들이면 한층 더 맛있는 조합을 맛볼 수 있다. 조금은 독특한 궁합을 맛보고 싶다면 영화와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영화를 감상하며 플뢰르 드 미라발이나 미라발 로제를 음미한다면 그 또한 색다르고 향긋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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