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훈의 산인만필(散人漫筆) <27>] “누가 다시 등불 심지 돋우며 한밤에 옷을 기워 주리?”

홍광훈 2023. 6. 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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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사는 시골집 마당에 홀로 남은 수컷 거위. 짝을 잃은 뒤에는 풀죽은 모습으로 늘 마당 한구석에서 멍하니 서 있다. 사진 홍광훈

중국 고대 시가에 ‘당시(唐詩)’와 ‘송사(宋詞)’가 있다. 우리에게 당시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송사는 생소하다. 전자가 고대로부터 친숙한 ‘한시(漢詩)’ 형태인 데 비해 후자는 구어를 가미한 ‘장단구(長短句)’의 새로운 시가이기 때문이다.

홍광훈문화평론가, 국립대만대학 중문학 박사, 전 서울신문 기자, 전 서울여대 교수

‘사’는 당나라 때 이미 탄생했고 송 이후에도 계속 창작됐다. 기존 악곡에 붙이는 가사였으므로 구어와 길고 짧은 구절이 함께 쓰였다. 형식 자체가 우리에게 이질적이었다. ‘백화(白話)’를 익히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렵고 지을 수는 더욱 없었다.

그나마 ‘고려사(高麗史)’의 ‘악지(樂志)’에 여러 편이 수록돼 있다. 이제현(李齊賢)·이곡(李穀)과 같이 중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거나 김시습(金時習)·허균(許筠)·정약용(丁若鏞)·조면호(趙冕鎬·1803~87) 등 특별히 흥미를 느낀 일부 문인이 더러 짓기도 했다.

구법(句法)이 정해져 있으므로 사 창작을 틀에 채워 넣는다는 뜻에서 ‘전사(塡詞)’라 한다. 물론 평측(平仄·고저장단)과 압운(押韻)의 규율도 엄격하다. 각각의 곡조는 ‘사패(詞牌)’라 한다. 악곡인 만큼 같은 형식이 반복된다. 앞이 ‘상편(上片)’, 뒤가 ‘하편(下片)’이다.

남송의 대표 시인 육유(陸遊)가 ‘채두봉(釵頭鳳)’이란 사패에 붙인 다음 가사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애송된다. 현대인이 새롭게 작곡하여 대중가요로도 불려진다.

“불그레 부드러운 손, 노란 천에 싸인 술병, 온 성 안 봄빛 속 담장 옆 버드나무. 봄바람은 밉고, 기쁜 정은 엷어라. 가슴 가득한 근심, 몇 해의 그리움. 잘못되고, 잘못되고, 잘못됐어라(紅酥手, 黃縢酒, 滿城春色宮牆柳. 東風惡, 歡情薄. 一懷愁緒, 幾年離索. 錯,錯,錯)! 봄은 옛날 같은데, 사람만 헛되이 여위어, 예쁜 수건 붉게 물들인 눈물 자국. 복숭아꽃 떨어지고, 연못 옆 누각 한가로워. 굳은 맹세 남았어도, 비단에 쓴 글 부치기 어려워라. 말자, 말자, 말아(春如舊, 人空瘦, 淚痕紅浥鮫綃透. 桃花落, 閑池閣. 山盟雖在, 錦書難託. 莫,莫,莫)!”

이 작품의 배경에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사연이 있다. 청년 시절 시인 육유가 어머니의 강요로 아내 당완(唐琬)과 헤어졌다. 이후 각각 재혼한 둘은 몇 해 뒤에 ‘심원(沈園)’이란 곳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육유는 혼자였고 당완은 남편과 함께였다. 남편의 양해로 당완이 육유와 잠시 재회했다. 고운 손으로 옛 남편에게 술을 따라주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의 감회를 벽에 적은 것이 바로 이 사다.

육유는 심원을 자주 찾았다. 당완은 마음의 병 때문인지 30대 중반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났다. 85세까지 장수한 육유는 심원에 올 때마다 비통한 마음을 시로 남겼다. ‘심원’이란 제목의 칠언절구 2수가 유명하다.

“성 위로 해가 비끼니 호각 소리 구슬픈데, 심원의 연못과 누각은 옛 모습이 아니로다. 가슴 아픈 다리 밑 봄 물결 푸르러, 그 옛날 놀란 기러기 그림자 비추며 왔었지(城上斜陽畫角哀, 沈園非復舊池臺. 傷心橋下春波綠, 曾是驚鴻照影來).”

“꿈 끊기고 향기 사라진 40년, 심원의 버들도 늙어 솜이 날리지 않누나. 이 몸은 곧 계산의 흙이 될 터인데, 아직도 남은 자취 슬퍼하며 눈물 흘리네(夢斷香銷四十年, 沈園柳老不吹綿. 此身行作稽山土, 猶弔遺蹤一泫然).”

그는 꿈에서도 심원을 거닐며 마음 아파했다. “성 남쪽 작은 길에서 또 봄을 만나니, 매화만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네. 옥골은 황천 아래 흙이 된 지 오랜데, 먹 자국은 아직도 벽 사이 먼지 속에 잠겨 있구나(城南小陌又逢春, 只見梅花不見人. 玉骨久成泉下土, 墨痕猶鎖壁間塵).”

고인을 애도하는 시를 ‘도망시(悼亡詩)’라 한다. 흔히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시가를 가리킨다. 이를 제목으로 한 최초의 작품은 서진(西晉)의 반악(潘岳)이 지은 ‘도망시 3수’다. 그러나 내용상 첫 도망시는 ‘시경’의 ‘녹의(綠衣)’편이다. 아내가 생전에 지어준 푸른 옷을 보며 슬퍼하는 정경을 묘사했다.

역대의 도망시가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소식(蘇軾)의 ‘강성자(江城子)’라는 사다. ‘을묘 정월 20일 밤 꿈을 적다(乙卯正月二十日夜記夢)’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0년 전에 세상 떠난 아내가 여전히 그리워 꿈에서 보고 깨어난 뒤의 애절한 심정을 서술했다.

“열 해가 지나 삶과 죽음 사이가 서로 아득하여라.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절로 잊기 어려워. 천 리 밖 외로운 무덤, 처량한 마음 말할 곳 없구나. 만난다 해도 몰라볼 터인데, 얼굴에 먼지 가득, 귀밑머리는 서리처럼 변했으니(十年生死兩茫茫. 不思量, 自難忘. 千里孤墳, 無處話淒涼. 縱使相逢應不識, 塵滿面, 鬢如霜).”

27세에 요절한 아내의 묘는 먼 고향에 있어서 타향을 전전하던 시인이 가기 어려웠다. 그동안 세파에 시달린 자기 모습도 많이 변했다. 하편에서는 그런 몰골로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와 만난다.

“지난밤 깊은 꿈에 홀연 고향으로 돌아갔더니, 작은 방 창 안에서 화장하고 있었지. 날 돌아보며 아무 말 않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네. 헤아리노니 해마다 애가 끊어질 곳은, 밝은 달밤 키 작은 소나무 언덕이어라(夜來幽夢忽還鄕. 小軒窗, 正梳妝. 相顧無言, 唯有淚千行. 料得年年腸斷處, 明月夜, 短松崗).”

소식보다 10여 년 후배인 하주(賀鑄·1052~1125)도 아내를 일찍 떠나보냈다. ‘자고천(鷓鴣天)’ 사패의 다음 가사가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다시금 창문을 지나오니 모든 일이 달라졌구나. 같이 와서 무슨 까닭에 함께 돌아가지 못하나? 가지 얽힌 오동은 맑은 서리 내린 뒤에 반이 죽고, 머리 희어진 원앙은 짝 잃고 날아간다(重過閶門萬事非. 同來何事不同歸. 梧桐半死淸霜後, 頭白鴛鴦失伴飛). 들 위 풀에 맺힌 이슬 막 말라버렸다. 옛 살던 집과 새 무덤에서 차마 떠날 수 없어라. 빈 침상에 홀로 누워 남쪽 창가 빗소리 듣나니, 누가 다시 등불 심지 돋우며 한밤에 옷을 기워 주리(原上草, 露初晞. 舊棲新壠兩依依. 空牀卧聽南窗雨, 誰復挑燈夜補衣)?”

아직 50세가 안 된 시인이 북방의 임지에서 돌아와 짝 잃은 자신의 쓸쓸한 모습과 아내에 대한 애틋한 정을 그렸다. ‘창문(閶門)’은 아내와 살던 소주(蘇州)의 성문이다. 아내는 ‘풀잎에 맺힌 이슬 마르듯이’ 일찍 세상을 떠나 그 빈자리가 너무 컸다.

청나라 최고의 사 작가로 일컬어지는 만주족 출신의 납란성덕(納蘭性德·1655~85)은 갓 서른 살에 요절했으나 더 일찍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시가를 40여 편이나 남겼다. 다음의 ‘완계사(浣溪沙)’가 대표작이다.

“그 뉘 가을바람에 홀로 추워하는 나를 걱정하랴? 우수수 떨어지는 누런 잎이 무늬 성긴 창을 가린다. 지난 일 생각에 빠져 지는 해 보며 섰노라(誰念西風獨自涼. 蕭蕭黃葉閉疏窗. 沉思往事立殘陽). 술에 취해 봄잠 거듭돼도 놀랄 것 없었다. 책 맞히기 내기하다 찻물 튀긴 옷에 향이 배었지. 그때는 그저 늘 있을 일인 줄로만 알았네(被酒莫驚春睡重. 賭書消得潑茶香. 當時只道是尋常).”

앞에서는 아내가 떠난 뒤에 홀로 남은 자신의 외로움을 묘사했으며, 뒤에서는 아내와 즐겁게 보내던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당시의 소소한 일상도 지나고 보니 큰 행복이었다.

‘책 맞히기 내기(賭書)’란 북송 말의 저명 여류 사인(詞人) 이청조(李淸照) 부부의 일화다. 부부는 어떤 고사가 어느 책의 어디에 실려 있는지 알아맞히는 내기를 해 이기는 사람이 먼저 차를 마시기로 했다. 이 놀이를 하면서 웃고 즐기는 가운데 찻잔을 엎어 옷을 적셨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금슬 좋던 부부의 행복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 조명성(趙明誠)이 50세가 채 안 되어 세상을 떠난 뒤에 이청조는 20여 년의 여생을 고독과 가난 속에서 어렵게 보내야 했다.

며칠 전 마당에서 키우던 거위 한 쌍 중 암컷이 죽은 채 발견됐다. 한밤에 개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홀로 남은 수컷의 울음소리가 유달리 슬프게 들린다. 둘이서 온 마당을 휘젓고 다니더니 이제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마당 구석에 서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이 애처롭다.

보통의 모든 부부는 늙도록 아무 탈 없이 함께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세상사가 늘 사람들의 바람과 어긋나는(事與願違)’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어렵게 맺은 귀한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생전에 서로 아끼며 조금이라도 더 위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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