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재라면 지옥行도"···'30년만의 칩워' 투자 DNA로 맞선다
<1>삼성전자-10년뒤 치킨게임 준비
미중일 반도체 공습에 경쟁 가열
더 과감한 투자로 기술 초격차 유지
"필요하면 정부와 원팀으로 뛰어야"
'품귀현상' 우수인력 확보도 관건
20일 경기 수원과 화성 사업장 등에서 열린 삼성전자의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올 2분기 전사(全社) 적자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D램 등 반도체와 세트 부문의 수요 회복이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침통한 상황 속에서도 삼성의 미래를 좌우할 인재·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 의지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는 게 삼성전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30여 년 만에 다시 현실이 된 칩워(Chip-War)의 상황에서 이를 돌파할 무기는 인재·기술·투자 이외에는 없는 탓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도 “인재와 기술을 위해 지옥도 마다하지 않아야 할 상황”이라고 작금의 엄중함을 설명했다.
삼성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경계현 사장도 전략회의를 앞둔 14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경기 침체기에 투자를 일시 중지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리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끊임없는 혁신과 선제 투자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우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이다”라고 밝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철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발언이다.
삼성이 ‘투자 직진’을 선언하는 배경에는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벌어진 두 차례의 반도체 치킨게임에서는 일본이나 대만 정도가 경쟁 국가였지만 앞으로 펼쳐질 치킨게임에서는 일본·대만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까지도 우리의 경쟁자로 링 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미 생존 경쟁은 시작됐다. 미국은 앞서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5년간 390억 달러(약 51조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최근 이 같은 지원금법 시행에 따라 미국에 투자 의향을 밝힌 전 세계 기업이 400곳을 돌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텔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 삼성을 제치고 2위 자리에 올라서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일본도 반도체 패권 경쟁에 가세했다. 일본 국부펀드인 산업혁신투자기구(JIC)가 자국의 포토레지스트 1위 기업인 JSR을 직접 인수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 주도권 경쟁을 예고했다. 압도적인 소부장 경쟁력을 바탕으로 옛 영광 회복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중국도 무시할 수 없는 이웃이다. 당장은 기술력은 부족하지만 “반도체 생태계를 전부 국산화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다. 이미 낸드플래시 등 일부 반도체의 경우 중국과 우리나라의 기술력 격차가 2년 이내로 좁혀졌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반도체 팹리스(설계)와 후공정(패키징) 분야에서는 중국이 우리나라를 앞선 지 오래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 내부에서는 앞으로는 정부와 삼성이 ‘원팀’으로 다른 나라 및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금까지는 삼성이 쌓아온 자금 조달 능력과 기술력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구도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은 120조 원 이상의 현금성자산을 확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반도체 혹한이 이어질 경우 연간 50조 원에 이르는 시설 투자를 더 이상 이어가기 어려울 수 있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 산업구조는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체계가 달라지는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며 “기업이 뛸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는 시대를 넘어 필요하다면 정부가 기업과 함께 뛸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삼성의 기술력이 아직까지는 혹독한 경쟁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우위에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삼성은 올 들어 범용 DDR4 D램의 고정가격이 2021년 대비 4분의 1토막으로 낮아지는 상황에서도 경쟁 업체 대비 손실 규모를 줄일 수 있었는데 이는 정교한 공정과 경쟁 업체를 압도하는 ‘규모의 경제’ 덕분이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전·후공정에 있어서 다른 업체와 비교할 수 없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그간 뚝심 있게 밀어붙였던 설비, 연구개발(R&D) 투자가 불황일수록 빛을 발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인력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가운데 얼마나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느냐 여부도 삼성의 초격차 경쟁력 유지의 주요 키워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지난해 회장에 취임하면서 ‘세상을 바꿀 인재 양성’을 강조하며 “최고의 기술은 훌륭한 인재들이 만들어 낸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빅테크는 물론 마이크론 등 제조 업체까지 우수 인력을 입도선매하고 있는데다가 중국 기업들까지 국내 인력들에게 2~3배 연봉을 제시하고 있어 삼성조차도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강해령 기자 h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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