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이상 함수개념 섞고···국어지문에 '브레턴우즈 체제' 나와
◆ 3년치 킬러문항 22개 살펴보니
국어 7개·수학 9개·영어 6개 등
고교 수준 넘은 지문·용어 사용
선택지 복잡해 의도적 실수 유발
'사교육 스킬' 습득한 학생에 유리
선정기준 모호···혼란 지속 전망도
교육부가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공정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해 ‘핀셋 제거’하기로 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사례 22개(국어·수학·영어)를 공개했다. 공개된 문항은 고등학교 수준을 벗어난 배경지식이 필요한 문항, 대학 과정 등을 선행학습한 학생이 풀기 유리한 문항 등으로, 당장 올해 9월 모의 평가부터 이러한 문항을 배제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인 예시를 공개해 수능을 5개월 앞둔 수험생들의 혼란을 막겠다는 게 교육부의 취지다. 하지만 킬러 문항의 선정 기준이 다소 모호하고 킬러 문항을 배제한 시험의 변별력 확보에 대해서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않아 수험생의 우려가 말끔히 해소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사교육 경감 대책’ 브리핑을 통해 앞서 공개를 예고했던 ‘킬러 문항’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는 현장 교원 등 외부위원과 함께 ‘킬러 문항 점검팀’을 구성해 이달 19~25일 최근 3년간의 수능 시험과 올해 치러진 6월 모의 평가의 국어·수학·영어 영역 총 480문항을 점검했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에 대해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이라고 정의하며 총 22개 문항을 지목했다.
국어의 경우 ‘고등학생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문과 전문용어를 사용해 배경지식을 가진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게 풀 수 있는 문항’이 킬러 문항으로 꼽혔다. 또한 ‘문제 풀이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내용 파악을 어렵게 하는 문항’과 ‘선택지의 의미와 구조가 복잡해 의도적으로 학생들의 실수를 유발시키는 문항’ 등도 킬러 문항으로 분류됐다.
구체적으로는 2024학년도 6월 모의 평가에서 ‘몸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다룬 지문을 읽고 추론하는 14번, 조지훈의 ‘맹세’와 오규원의 ‘봄’이라는 시에 달린 3점짜리 질문인 33번 등이 전문용어 사용과 높은 수준의 추론 등을 이유로 킬러 문항으로 선정됐다.
또한 2023학년도 수능에서는 ‘클라이버의 기초대사량 연구’를 다룬 과학 지문에 딸린 15번과 클라이버의 법칙을 이용해 농게 집게발의 길이를 추정하는 17번 문제에 대해 “과도한 추론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2022학년도 수능 국어에서는 ‘달러화’의 기축통화 역할과 ‘브레턴우즈 체제’를 다룬 경제 분야 지문에 딸린 13번이 꼽혔다.
수학에서는 올해 6월 모의 평가 수학 공통 과목의 21·22번과 선택 과목 ‘미적분’에서 마지막 문항인 30번이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다. 22번의 경우 다항함수의 도함수, 함수의 극대·극소, 함수의 그래프 등 세 가지 이상의 수학적 개념이 결합해 공교육 학습만 받은 학생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 교육부의 분석이다. 2023학년도 수능에서는 공통 과목 마지막 주관식인 22번과 선택 과목 ‘확률과 통계’의 30번, ‘미적분’ 30번이, 2022학년도 수능에서는 ‘미적분’ 29번, ‘기하’ 30번이 킬러 문항에 올랐다.
영어에서는 2024학년도 6월 모의 평가에서 33번·34번, 2023학년도 수능에서는 34번과 37번, 2022학년도 수능에서는 21번과 38번이 킬러 문항으로 선정됐다.
사교육을 통해 문제 풀이 기술을 반복 훈련하거나 대학 과정 등을 선행학습 한 학생에게 유리한 킬러 문항이 수능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 교육계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염동렬 충남고 수학 교사는 “대학에서 나오는 개념을 사용해 좀 더 배운 학생이 원활히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것은 형평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계 일각에서는 교육부의 킬러 문항 선정 기준이 다소 모호해 수능을 5개월 앞둔 수험생의 혼란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 선정 기준으로 정답률 등 정량지표는 참고로만 활용했을 뿐 주요 기준으로는 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연석 교육부 책임교육정책관은 “(킬러 문항 선정 기준은) 전문가마다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교육과정 안이냐, 밖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에서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이라고 말했다.
킬러 문항을 배제한 시험의 변별력 확보 방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은 내놓지 않았다. 이에 ‘물수능’ 전망에 따른 우려와 함께 입시 업계의 ‘준킬러 문항’ 대비 마케팅 등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교육부는 출제 기법 고도화를 통해 변별력을 확보할 방침이라며 이를 9월 모의 평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부총리는 “수능이 쉬워진다는 게 아니다”라며 “킬러 문항은 단순히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 바깥에서 출제된 문제이기 때문에 난이도 논란과 상관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킬러 문항 없이 물수능이 된다는 것은 사교육계의 논리이며 킬러 문항이 없더라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고 물수능도 불수능도 아닌 공정한 수능이 될 수 있다”며 “새로운 원칙이나 유형을 도입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신중섭 기자 jseop@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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