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이미 패배"… 고르비·옐친도 '실패한 쿠데타' 후 몰락

최현재 기자(aporia12@mk.co.kr) 2023. 6. 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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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언론 일제히 푸틴 때리기
반란당일부터 상황종료까지
러 국방 공식석상 안나타나
국가안보 총체적 무능 부각
프리고진에 면죄부 결정도
'철권' 푸틴 명성에 치명타
"내년 대선 불출마" 관측까지

◆ 러 용병반란 후폭풍 ◆

러시아를 향한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이 36시간 만에 종결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반란을 일으킨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행방이 묘연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반란 초기 군 수뇌부들이 일제히 공개 석상에서 사라지면서 러시아 정부의 '리더십 공백'도 도마에 올랐다. 국가안보를 늘 강조했던 푸틴 대통령이 정작 비상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그의 내년 대선 출마 여부도 불확실해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바그너그룹이 러시아 영토를 점령하기 시작하던 24일 오전 한 차례 대국민 연설에 나선 이후 사태 종식 때까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도 반란 행위가 개시된 23일 저녁부터 사태가 일단락된 25일까지 자취를 감췄다. 다만 26일 로이터통신은 쇼이구 장관이 바그너 용병단의 무장 반란 이후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그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를 방문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에 투입된 러시아 군부대를 방문했다고만 밝혔다.

벨라루스로 망명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 프리고진의 소재도 사태 종료 하루가 지나도록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CNN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전날 저녁 러시아 남서부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나는 모습이 목격된 이후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NYT는 "지난 주말 러시아의 안정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며 "집권 23년 만에 최대 위기를 겪은 푸틴 대통령도 연설 이후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전했다.

러 국방장관 등장? 러시아 국방부가 26일(현지시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오른쪽)과 예브게니 니키포로프 서부지역 사령관이 군용 헬리콥터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쇼이구 장관과 니키포로프 사령관이 우크라이나 내 미공개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인 '자파드'의 지휘소를 시찰하러 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날 쇼이구 장관의 시찰이 실제로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AP연합뉴스

반란을 주도했던 바그너그룹 수장 프리고진을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푸틴의 명성에 치명타를 안겼다. 정치 분석가이자 전 크렘린 고문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NYT에 "푸틴에게 이번 반란은 '실존적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벨 슬런킨 전 벨라루스 외교관도 "푸틴은 그의 시스템이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쉽게 공격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미 패배했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친크렘린 인사들은 NYT에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프리고진을 상대할 기회를 계속 차버렸다"며 "24일 프리고진의 봉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즉석에서 내려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친크렘린 성향인 모스크바신문의 콘스탄틴 렘추코프 편집자는 NYT에 "집권 중인 푸틴이 국가 안전을 보장한다는 믿음은 반란 사건으로 깨졌다"며 "측근들이 내년 대선 불출마를 설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소련과 러시아에서 발생한 쿠데타는 권력의 종말로 이어졌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1991년 8월 구소련에서 공산당 보수파가 일으킨 쿠데타에 직면했다. 반란 세력은 고르바초프를 별장에 감금하며 권력 전복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당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이 주도한 반쿠데타 시위가 국민적 지지를 얻으면서 쿠데타의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좌로 돌아온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거세진 소련 해체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같은 해 12월 사임했다.

옐친 대통령도 1993년 9월 '헌정 위기'를 겪었다. 러시아 연방 공산당 등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무장 반란을 꾀한 것이다. 옐친 대통령은 육군 병력까지 동원한 강경 진압으로 권력을 지켜냈으나, 지지율은 하락 곡선을 그렸다. 결국 그는 1999년 말 6개월의 잔여 임기를 뒤로하고 사임했다.

이보 달더르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재 미국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소련 지도자는 쿠데타를 진압하고서도 몇 달 뒤에는 권력을 잃었다"면서 "푸틴은 지금으로선 살아남겠지만 지난 24시간은 그의 권좌 유지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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