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성능 높이려 신입작가는 시범테스트 대상 될 것”[AI 스토밍⑤]

김은성 기자 2023. 6. 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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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작가 제공.

“제작사는 비용을 줄이고, 인공지능(AI)은 성능을 높이기 위해 기회가 절실한 신입작가들을 상대로 시범 테스트를 하려고 할 겁니다.”

이승현 시나리오 작가(46)는 지난 19일 서울 가양동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AI 활용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이미 자리를 잡은 소수의 메인작가들만 살아남아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며 이같이 우려했다.

이 작가는 최근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을 대표해 서울 넷플릭스 한국지사 앞에서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을 지지하는 집회를 하며 창작자들과 연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파업을 시작한 WGA는 미국 할리우드와 방송작가들이 가입한 단체다. 파업 이후 TV 토크쇼 등이 결방하고, 시리즈 영화 <아바타> <스타워즈> 등의 영화 개봉이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웹툰업계도 작가들과 독자들이 인터넷상에서 ‘AI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어 미국의 움직임이 더 주목된다.

이들의 공동행동은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제작사들의 AI 사용 규제를 요구한 ‘인간의 첫 파업’으로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또 기술이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인식되던 ‘작가’ 영역에서 파업이 벌어져, 이들의 논의 결과가 다른 분야 창작자들에게도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이 작가는 “AI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기술 발전을 막자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정당한 보상 없이 저작권을 훔쳐 누군가의 고혈을 바탕으로 AI가 발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대본 초안 등이 누군가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긁어와 짜깁기한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드라마 <추한사랑>(KBS), 영화 <더폰: 중국 리메이크>의 각본 등을 쓴 16년차 작가다. 작가 시절 2021년 한국형 GPT 프로그램에 개발에 참여하고, 데뷔 전에는 IT기업에서 3년여간 기획·마케팅을 할 만큼 기술에 관심이 많다. 최근 돌풍을 일으킨 챗GPT도 써봤지만 아직 ‘유효타’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논문과 기사처럼 사실을 기반으로 정형화된 규칙이 있는 글을 요약하거나 짧은 카피 등을 만들 때는 챗GPT가 도움이 된다”며 “하지만 시나리오와 대본, 이를 위한 초고나 기획안 등을 만들려면 반드시 사람의 손을 수십 번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학습한 데이터 패턴을 기반으로 가장 높은 확률의 대답을 만드는 생성형 AI의 구조상 창의적인 전략을 담아내야 하는 ‘초고’는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제작사들은 이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WGA에 따르면 제작사들은 AI를 활용해 엉성한 대본 초안을 만든 뒤 작가에게 저임금으로 각색을 맡기고, 작가들의 작품을 무단으로 AI에 학습시키고 있다.

실제로 유명 제작사인 마블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신작 드라마의 오프닝 크레딧을 AI로 제작했다고 밝혀, 업계와 누리꾼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하지만 마블은 어떤 AI 도구를 사용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또 넷플릭스 본사는 시나리오를 위한 AI 개발을 완료하고 AI가 쓴 초고를 작가가 손질하는 작업 방식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에서 미국에 이어 한국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점을 감안하면 AI가 학습할 다음 상대는 한국 작가들의 창작물이 될 수 있다.

WGA는 AI는 도구이며 창작자가 될 수 없고, AI가 생성한 결과물은 어문 저작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 등의 가이드라인 마련을 제작사들에게 요구했으나, 대화에 진척이 없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비용 감소를 넘어 AI의 높은 생산성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이 작가는 “제작사들에게는 AI가 짜깁기한 말도 안 되는 초안이 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챗GPT등을 써본 결과) 초안을 각색하는 작가로서는 모두 다시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어 “AI가 만든 초안을 신입작가에게 각색을 맡기고 작가는 매우 적은 돈으로 사실상 각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쓰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들이 창의력과 시간을 갈아 넣어 만든 창작물을 제작사들이 비용을 줄이는 착취 도구로 쓰일 것이라는 우려다.

그는 작가들의 연대 파업에 대해 “제작사들이 AI 프로그램을 어떻게 학습시켰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창작자들의 권리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쓸 수 있는 원칙을 만들기 위해 함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 AI의 학습 과정을 사람이 책으로 공부하는 것과 같다는 주장들에 대해선 “반도체로 구동되는 AI가 저작권을 가질 수 있는 인간 혹은 혹은 법인으로 볼 수 있는지 사회적 합의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질 높은 데이터가 있어야 AI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며 “AI 제작으로 양산형 작품이 나오면 작가는 물론 일반 대중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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