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1층’ 서울도 가능할까···오세훈 “강남서 실패한 진짜 ‘공개공지’, 세운 등에 만들겠다”
시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개공지’는 도시의 공공성을 대변한다. 언제든 머물렀다가 떠날 수 있는 휴식과 여유의 공간은 요금 등 경제적 매개에 따른 접근 제한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 도심 건축물들은 카페와 식당 등으로만 공간을 채워 소비자의 정체성을 가질 때만 환대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90년대 시작된 ‘방’ 문화도 마찬가지다. 공적 역할 대신 권위적으로 상업화된 것이다.
지난 25일 오전 일본 도쿄 치요다구 마루노우치 브릭스퀘어 정원 앞은 일요일 도심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이 아침 더위를 피해 나무 밑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건물 1층에 식당가가 형성돼 있지만 가게에 들어가지 않아도 주변 야외 공간에 벤치가 설치돼 앉을 자리는 많다.
이곳은 1990년대 마루노우치 지구 재개발에 참여한 일본 부동산개발업체인 미쓰비시지소(三菱地所)가 2009년 완공한 업무·상업 복합건물이다. 용적률 100%(기본 1300%)를 추가로 받기 위해 1800년대 지어졌다 철거된 ‘미쓰비시 1호관’을 복원하며 공원을 만들었다. 도쿄역 공중권(130%)을 구매하고 지역 냉난방 신설(35%) 등을 추가해 총 용적률 1565%로 개발된 건물이다.
도쿄 업무 중심지인 마루노우치·오테마치 일대에선 이 같은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브릭스퀘어에서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2014년 준공된 오테마치 타워에는 건물 옆으로 1300㎡ 규모의 숲(오테마치 모리)이 조성돼 있다. 전체 부지의 3분의 1 규모다. 개발 계획·공사가 진행되는 5년간 현장과 똑같은 구조의 땅에서 키운 나무들을 표토까지 다 그대로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시민들은 사유지인 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휴식 공간으로 머문다.
송준환 야마구치대학교 건축학 부교수는 “(재개발 과정에서) 가로를 공원화한 것은 개별 필지만으로 업무 공간을 채울 수 없다는 인식”이라며 “높이 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퇴근 후에도 사람들이 모이게 하려면 저층 공간이 상업·문화 등으로 활용도가 높아야 한다”고 말했다.
2020 도쿄올림픽 전후 개발이 진행 중인 미나토구 토라노몬·아자부다이 지역도 초고층 건물을 지으면서 지하와 지상으로 일반 시민들이 오갈 수 있는 동선을 연결하는 설계의 초점을 맞췄다. 지하철 역사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건물 내외부 공간에 녹지와 인공폭포, 에스컬레이터를 만들어 이동성을 높이고 설비실이 위치하는 배면을 활용해 나무와 꽃들을 심은 산책로를 조성해 개방한 것이다.
서울의 경우 대형 건물이 위치한 가로는 대부분 카페 등이 들어서 ‘유사 공공공간’ 기능에 그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마루노우치 등을 둘러본 후 “그동안 도심 건축물은 공급자 중심이었다”며 “서울시가 구상 중인 녹지생태도심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세금을 들이지 않고 시민에게 제공되는 녹지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우선인 ‘서울대개조론’”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 서울시 ‘도시계획국’을 ‘도시공간국’으로 바꿔 공개공지 등을 조성하는 정책에 집중할 방침이다. 1층을 중심으로 한 저층부를 녹지 등 공공공간으로 조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에 방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의 공공공간은 연간 편차가 큰 기후도 염두해야 한다. 겨울에도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는 도쿄는 건축물 공개공지의 공원과 산책로 기능이 중심이지만, 겨울이 긴 한국은 공원과 같은 야외 공간으로만 조성하면 쓸 수 있는 기간이 훨씬 짧다. 이에 실·내외 공간 활용이 모두 필요하다.
오 시장은 건축물로 둘러싸인 가로변이 카페 등 사업시설 중심인 데다 실내 공공공간이 폐쇄적으로 구성된 강남 지역에 대해 “실패한 도시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개공지로 받은 것을 실내에 만들고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고 써 붙인다는 계획을 듣고 경악했다”며 “녹지를 만들면 용도 변경과 용적률 제한을 풀겠다는 서울시 계획은 초고층 개발이 핵심이 아니라 이 같은 공공공간을 세금을 들이지 않고 확보하겠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오 시장은 종로 세운상가 주변과 서울역, 강남 등의 지역을 공공공간 개념을 적용해 재개발할 수 있는 대표 지역으로 꼽았다.
특히 1960~1970년대 마루노우치 재개발 논의가 시작될 때는 일왕이 사는 고쿄(황거) 인근이라 높이에 대한 저항감이 있었으나 금융 산업 경쟁력을 위해 용적률 1500%, 높이 200m 이상으로 개발한 점을 들어 세운지구 일대에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창덕궁부터 종묘까지 문화재 옆이라 지금은 거부감이 크지만, 높은 건물은 역사 유적의 주변부로 빠지고 중심에 선형 녹지가 형성되는 것”이라며 “어느 것이 더 문화재 돋보이게 하느냐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송 부교수는 “개발 후 가치를 특권층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 관건”이라며 “지자체가 다양한 정책적 메뉴를 만들어 민간이 선택해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쿄 |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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