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반란 최대 승자는 옆집 독재자”···존재감 드러낸 ‘푸틴 꼭두각시’ 루카셴코
‘믿을 수 있는 중재자’로 변신
푸틴과 “샴쌍둥이 같은 존재”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이 일으킨 반란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중재에 나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에게 회군을 설득해 유혈 사태를 막음으로써 ‘푸틴의 꼭두각시’에서 그의 가장 ‘충성스러운 동맹’으로 입지를 다지게 됐다는 것이다.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불리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서 “의외의 승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자국민을 탄압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그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크렘린의 가장 유순한 총독”으로 불려 왔다.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를 지원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다.
NYT는 국제사회에서 ‘왕따’ 신세이던 루카셴코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발판 삼아 ‘믿을 수 있는 중재자’이자 ‘충성스러운 푸틴의 동맹’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벨라루스 관영 언론들이 그의 중재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루카셴코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돈바스 공격 당시에도 중재자를 자처하며 양국 간 회담을 주선한 바 있다.
벨라루스의 전직 외교관이자 유럽대외관계협의회 분석관인 파벨 슬루킨은 “(바그너의 반란으로) 푸틴은 자신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 지 보여줬고, 프리고진은 호기롭게 푸틴에 도전했으나 결국 패자처럼 물러났다”면서 “오직 루카셴코만이 푸틴 앞에, 더 나아가 국제사회 앞에 중재자이자 협상자로서 승점을 얻었다”고 말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크렘린에 적극 협조하며 벨라루스의 ‘속국화’를 가속화시킨 인물로 평가 받는다. 지난해 2월 침공 당시엔 남부 접경지를 통해 러시아군이 키이우로 진격할 수 있도록 영토를 제공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조사 중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어린이 납치’에도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를 자국에 배치하도록 허용하며 벨라루스의 주권과 자국민의 안보 모두 러시아에 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망명 중인 벨라루스의 야당 지도자 스비아틀라나 치카누스카야는 AP통신에 “루카셴코가 프리고진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루카셴코는 다시 한 번 벨라루스를 이 전쟁의 인질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벨라루스의 초대 대통령이자 1994년부터 30년 가까이 장기 집권 중인 그가 처음부터 ‘종속’에 가까운 친러 밀착 행보를 보인 것은 아니다. 옛소련 시절 집단농장 관리인을 지낸 그는 1991년 벨라루스가 소련에서 독립한 뒤 반부패 운동가로 활동했고, 1994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한동안 러시아에 충성하면서도 일정 정도 거리를 둬 왔다. 그러나 2020년 그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면서 충성에 가까운 친러 행보가 가속화됐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시위를 대대적으로 탄압했고,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러시아에 정치·경제적으로 의존해 왔다. 푸틴과 루카셴코 대통령은 양국을 통합하는 ‘연합국가’ 논의도 이어가고 있으며, 전술핵 배치도 이 협의의 일환이다.
NYT는 루카셴코와 푸틴 모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생 관계라고 분석했다. 망명 중인 벨라루스의 전직 외교관 파벨 라투슈카는 “루카셴코와 푸틴은 샴쌍둥이 같은 존재”라며 “그들은 서로 없이는 살 수 없다. 한 사람의 몰락은 다른 사람의 정치적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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