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해야” 나이스 오류에 ‘대혼돈’ 빠진 교육 현장
극심한 혼란 속 당국 향한 비판 목소리 커져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교육 현장이 대혼돈에 빠졌다. '4세대 교육행정정보서비스'(NEIS·나이스)가 개통 직후 오류를 일으키면서 초유의 시험 답안 유출 등 극심한 혼선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일선에서는 교사들이 주말까지 반납한 채 문항 교체 작업에 착수했지만, 시스템 보완 장기화 우려가 나오면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현장 혼선을 키운 시스템 개통 시점과 방식을 두고 교육 당국의 책임론이 불거져 나온다.
26일 교육부에 따르면, 4세대 나이스 개통 이후 중간·기말고사 답안을 출력하는 '문항정보표' 관련 오작동이 확인된 사례는 현재까지 10여 건에 달한다. 주로 서울과 경기권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답지 오출력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극심한 혼선 속 한숨 커지는 교사들
4세대 나이스 시스템을 통해 학교별 중간·기말고사 답안을 출력할 수 있는데, 교사가 소속된 학교가 아닌 제3의 학교 답안지가 노출·출력된 것이다. 철저한 보안이 유지돼야 할 학교 시험 답안지가 국가 교육망을 통해 통째 다른 학교로 유출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교육부는 문항정보표 출력 기능을 중지한 뒤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6월26일 이후 시험을 치르는 학교는 답지(번호) 및 문항 순서를 변경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해달라"라고 공지했다.
그러나 답지가 유출된 학교를 포함해 일선에서는 시험 이후 불거질 형평성 등 각종 논란을 의식해 아예 문제 자체를 바꾸는 등 주말 새 긴박한 상황에 대응하며 골머리를 앓았다.
경기 지역 한 고등학교 교사는 "이미 기말고사 시험지 인쇄까지 끝난 상태인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모르겠다"며 "학교마다 나이스 오류로 극심한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데 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 지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특히 고3의 경우 대학 수시전형으로 인해 기말고사 일정 및 성적 입력 완료 시점이 변경되면 안되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남 지역에서 고3 교과를 맡고 있는 정아무개(35)씨는 "실컷 성적 입력을 했는데 데이터가 다 날아가면 어쩌나 하는 얘기를 교사들끼리 하고 있다"며 "엑셀이나 워드 이중 저장 등 '각자도생' 장치를 마련해 놓지 않으면 결국은 다 교사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어 근심이 크다"고 전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 교사 최아무개(50)씨도 "4세대 나이스 오류로 수행평가 입력도 안되고 있고, 생활기록부와 시험 관련 오류가 많아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앞서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4세대 나이스 구축을 완료하고 지난 주부터 전국 17개 시·도교육청과 초·중·고 1만200여 교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총 2824억원을 들여 개발한 4세대 나이스는 그러나 개통 직후부터 접속 장애 등 크고 작은 오류가 계속 발생하며 잡음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초유의 답지 유출까지 터지며 민감한 학생 개인정보 유출 우려도 고개를 든다. 보안 취약성이 이미 드러난 상황에서 전국의 초·중·고교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의 신상 및 성적 정보도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책임 또 학교로 떠넘겨…이주호 장관 파면해야"
교원단체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교육 당국에 있다고 비판했다. 기말고사와 1학기 성적 입력 등 주요 학사일정이 있는 데다 학기 말 교사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시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이 4세대 나이스 개통을 앞두고 교사 19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7.1%가 '개통 시기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방학 등 시스템 오류 가능성을 고려해 시행 시기를 조절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고교학점제 도입과 교육과정 개편 등을 반영한 업그레이드가 필요했고, 오는 9월부터 대입 수시전형이 시작되는 만큼 이달 말 4세대 시행이 불가피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교육 현장의 우려가 그대로 현실화하면서 책임론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전날 4세대 나이스 오류와 관련해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학교 현장에 혼란과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당분간 모든 행정 역량을 기말고사 무사 시행과 새 시스템 교체 여파를 최소화하는데 쏟아달라고 당부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4세대 나이스 시행 전면 중단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대한 파면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교조는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말고사를 준비한 모든 학교에 비상이 걸렸는데 교육부는 '문항정보표'만 문제인 것처럼 단순화해 공문 한 장으로 그 책임을 또 학교로 떠넘겼다"며 "일은 교육부가 저지르고 수습은 학교 몫"이라고 당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기간에 나이스를 개편해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4세대 나이스 도입을 중단하고 모든 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아울러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이주호 장관을 파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도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4세대 나이스 먹통 사태에 대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학교들의 시험 문제가 뒤바뀌거나, 접속이 차단돼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니 황당무계하다"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수천억원을 들여 준비했다는 시스템이 혼란만 야기하고 있으니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윤석열 정부답다"며 "윤 대통령의 즉흥 지시로 발생한 수험생들의 혼란이 여전한데, 무리하게 밀어붙인 시스템 졸속 개통으로 교육 현장은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의 상황을 맞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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