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턱밑서 멈춘 용병그룹의 운명은…굴욕 푸틴, 칼 빼들까
아프리카 내전 지역서 푸틴 대신 손 더럽혀…영향력 무시 못해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이 하루 만에 끝나며 바그너그룹의 운명에도 관심이 쏠린다.
25일(현지시간)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시아의 우방국 벨라루스 정부 중재로 러시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프리고진은 벨라루스 정부 중재 아래 크렘린궁과 바그너그룹이 맺은 합의에 따라 벨라루스로 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떠나는 조건으로 그와 바그너그룹 전투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했고, 무장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바그너그룹 용병이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해 활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러시아 당국은 무장 반란을 촉구한 혐의로 기소된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입건을 취하했다.
다만 애초 바그너그룹이 요구한 러시아군 수뇌부에 대한 처벌에 합의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조용한 생활을 이어갈지, 벨라루스에서 또 다른 군사 작전 준비에 나설지, 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프리고진에 보복할지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러시아 전문가 키어 자일스는 알자지라에 "우리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파악하기 위해 의존할 수 있는 고정된 데이터가 없다"고 언급했다.
◇벨라루스에서도 안전 불확실…"푸틴, 반역자 용서하지 않아"
우선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을 '반역자'로 규정한 만큼 그의 안전은 불확실하다. 프리고진이 러시아를 떠나 벨라루스로 가더라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망명 중인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는 "루카셴코는 결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그가 프리고진을 어떻게 할지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CNN 모스크바 지국장 출신인 러시아 전문가 질 도허티는 "푸틴은 반역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며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암살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 러시아 총리는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프리고진이 일단 벨라루스로 가겠지만, 보복을 피해 다시 아프리카 정글 같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그너 해체 시 우크라·나토에 '최고의 선물'
러시아가 프리고진에 대한 즉각적인 처단이 아닌 망명을 허락한 데는 전쟁 상황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부 차관을 지낸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 하원 국방위원회 의장은 러시아 현지 일간 베도모스티에 "바그너그룹 자체의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그들을 무장해제 하고 해체하는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그너그룹의 반란으로 최대 혜택을 얻을 국가가 우크라이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빌 테일러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는 BBC에 "우크라이나군은 바그너그룹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으로 드러난 전술적 약점을 이용할 좋은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CNN도 전직 미 육군 소령의 말을 인용해 "(바그너그룹의) 일부는 망명을 결심하고 우크라이나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들은 국가나 임무가 아니라 프리고진이라는 사람에게 충성한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 등 내전 지역서 푸틴 대신 손 더럽혀…영향력 무시 못해
바그너그룹이 시리아, 아프리카 등에서 확대해 온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바그너그룹은 푸틴 정권이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 처리해 왔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때 포로 및 민간인 학살에 관여했고, 시리아, 리비아,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베네수엘라 등 푸틴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독재자가 지배 중인 국가를 지원하며 이권 사업을 따냈다.
이에 미국은 바그너그룹이 아프리카 등지에서 천연자원을 착취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유럽 각국도 바그너그룹을 테러 단체로 지정하기 위한 준비 과정을 밟고 있다.
글로벌 안보 컨설팅업체 수판그룹의 러시아 전문가인 콜린 클라크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크렘린이 바그너그룹을 소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러시아와 푸틴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리비아, 시리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말리 등 전 세계에서 러시아 외교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바그너그룹에 의존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란에 러시아 내부서도 호의적 반응…고심 커지는 푸틴
이번 반란이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으며,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거취를 두고 고심이 깊어졌다.
이날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 병사들이 철수하면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환호를 받는 모습들이 언론에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에서 대통령을 위한 자발적인 집회가 없었다는 사실은 푸틴의 23년 통치 이후 변화에 대한 갈망을 보여줬다고 러시아 분석가들은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친(親)정부 성향 싱크탱크인 정치학 연구소의 세르게이 마르코프 소장은 텔레그램에 "전 세계는 러시아가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음을 목격했다"며 "반란은 실패했지만, 이 반란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유가 남아 있으면 반란은 다시 일어나고 성공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선임 연구원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도 WSJ에 "차르(황제)가 자신의 통제에 있어야 할 사람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차르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며 "러시아는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바그너의 반란은 아스팔트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반으로 갈랐다"고 평가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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