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학교 석면 조사 보고서 짜깁기’ 업체, 학교 계약 또 따냈다
“2027년까지 제거”…“공사 대비 조사기관 능력 부족” 구조적 문제도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서울시교육청 산하 11개 지원청이 학교 석면 조사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던 석면 조사기관들에 일감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의 조사기관들은 2022~23년 겨울방학 기간에 전체 계약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수의계약으로 가져갔다. 이는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석면 보고서 짜깁기 의혹'과 관련한 공익 제보 이후 감사를 하던 시기에 벌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5년치 석면 조사 보고서 전수조사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2027년까지 석면 제거 목표를 안전하게 완료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석면 조사기관 수와 인력에 비해 학교 공사 물량이 급증하는 등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시교육청의 대책이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약 건수 64개 중 63개가 수의계약
39%. 서울시교육청 산하 11개 지원청이 2022년 하반기 학교 석면 해체·제거 이후 진행하는 조사기관과의 계약 가운데 허위 보고서 문제로 지적받은 업체와 계약한 비율이다. 시사저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2022년 방학 기간의 석면 공사 관련 계약 현황 등을 확보했다. 자료 분석은 2022년 11월 이후 착수한 석면 공사를 대상으로 했다. 이를 시사저널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각 지원청의 답변과 교차 검증했다. 그 결과 지난해 '허위 석면 보고서' 논란을 일으킨 조사기관들이 감사 기간과 이후에도 164건 가운데 64건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들 업체는 2021년 서울 학교의 석면 검출 결과를 짜깁기하는 등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석면 조사기관은 석면 해체·제거 후 석면 잔재물을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서울에서는 전자현미경을 통한 석면 조사도 이뤄진다. 시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018년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석면 조사를 자체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는 석면과 관련한 석면안전관리법과 그 시행령, 산업안전보건법 등 어떠한 규정에도 근거를 두지 않는 제도다. 이 가운데 5곳 업체가 조사 보고서를 허위 작성했다는 공익 제보가 지난해 10월 접수됐고, 서울시교육청은 이후 감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4곳의 업체가 작성한 서울 17개 학교의 석면 보고서에 담긴 사진이 중복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1월18일자 기사 참조)
시교육청은 감사 이후 수사 의뢰(2곳), 부정당업자 제재(2곳) 등 조치를 취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계약금을 모두 환수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처럼 문제가 드러난 4곳의 업체는 감사가 진행 중이던 2022년 11월~2023년 2월 서울 학교의 석면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심지어 이들 업체가 계약할 때 입찰을 통한 경우는 64건 중 1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63건은 모두 수의계약이다. 문제를 지적받은 4곳 가운데 2곳은 정부의 평가 등급상 미평가업체로 분류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 2023년 1월 기준 고용노동부의 지정을 받은 석면 조사기관은 220곳이다.
"조사 보고서 전수조사 중"이라는 시교육청
4곳의 조사기관이 지원청과 계약한 금액은 남부·성동광진·강서양천을 제외한 8곳 기준 최소 8억여원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계약은 각 지원청이 하는데 감사 기간 중에는 해당 업체가 어딘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면서 "감사 후에는 통보했다"고 해명했다. 한 지원청 관계자는 "'석면 잔재물 조사기관의 현미경 분석 결과 보고서나 재사용 의혹으로 교육청 감사가 진행 중이니 유의하라'는 공문은 왔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공유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고, 다른 복수의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이나 결과를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 관계자는 "입찰을 내도 부적격 업체가 지원하는 등 조사기관 선정에 어려움이 있어 직접 연락을 돌려 계약을 맺었다"며 "문제를 알게 된 뒤 최근 해당 업체와 수의계약한 건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1월 감사 결과 4개 조사기관에 제재를 가했다. 아울러 인공지능(AI) 시스템을 통한 보고서 판독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실제로 시교육청은 4~9월 각 지원청의 최근 5년치(2018~22년) 학교 석면 조사 보고서를 AI가 분석하도록 하는 내용의 용역을 진행 중이다. 시교육청은 또 6월16일 보도자료에서 "2017년부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과제로 2027년까지 학교 석면 제거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공사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러한 방침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공사 물량은 급증했지만 조사기관이 이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서울의 전자현미경 제도는 현행법상 근거 규정이 없기 때문에 단속과 처벌도 어렵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조사기관의 석면 잔재물 조사에는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며 "그런데 2022년 겨울방학에 학교 석면 공사가 전국적으로 급증했고, 조사기관이 이를 못 따라가는데도 계약하는 경우가 다수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 조사기관은 전자현미경 관련 업체에서 '조사를 대신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도 한다.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에 소속됐던 김숙영 활동가는 "서울 일신초의 경우 음압기 미설치 등 공사 과정이 부실했지만 감리와 지원청은 전자현미경 조사 결과만을 토대로 '문제 없다'는 입장"이라며 "실제 현장에서는 관리·감독이 전혀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면은 오랜 잠복기 끝에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10대 여학생(악성중피종)의 피해 사례가 추가됐다. 악성중피종을 앓는 10대 남학생에 이어 두 번째다. 석면피해구제법상 석면 관련 질환은 석면폐증, 폐암, 악성중피종 등이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물질이다.
정성환 가천대 길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석면 사용이 금지되면서 많은 양의 석면을 들이마시는 경우는 요즘 굉장히 드물지만, 서서히 노출되면 10여년 후 문제가 되는 경우가 꽤 있다"면서 "대개 20년을 잠복기로 보는 악성중피종도 드물지만 10대에서도 발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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