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슈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하다

서정민 2023. 6. 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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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투어 마지막 서울 공연 현장
방탄소년단 슈가가 솔로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뮤직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슈가는 오토바이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연습생 시절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를 당해 어깨를 다친 것이다. 그는 25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펼친 단독 공연에서 이 사고를 주요한 모티브로 삼았다. 음악, 퍼포먼스, 영상, 무대 연출 등을 통해 개인적이면서도 거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종합예술을 구현해냈다.

공연의 문을 연 건 대형 전광판 영상이었다. 빗길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길바닥에 누워있는 슈가의 모습이 단편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졌다. 영상이 끝나자 댄서 4명이 슈가를 들어올린 채 등장했다. 그들은 슈가를 바닥에 눕혀놓고 사라졌다. 영상 속 장면과 이어지는 듯한 상황. 커다란 무대에 혼자 누워있던 슈가는 몸을 일으키며 ‘해금’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거스트 디(D)라는 이름으로 지난 4월 발표한 솔로 앨범 <디데이> 타이틀곡이다. 이어 ‘대취타’, ‘어거스트 디’, ‘기브 잇 투 미’ 등 힙합 기반의 솔로 곡들을 불렀다. 방탄소년단의 칼군무 대신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몸짓으로 무대를 휘저었다.

방탄소년단 슈가가 솔로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뮤직 제공

슈가는 대구 언더그라운드 힙합신에서 활동하다 방탄소년단 멤버가 됐다. 10대 시절부터 랩과 음악 프로듀싱을 했다. 지금 방탄소년단에서도 메인 래퍼와 프로듀싱을 맡고 있다. 그는 그룹 활동과 별개로 솔로 활동을 해왔다. 비공식 앨범인 믹스테이프 <어거스트 디>(2016)부터 최신작 <디데이>까지 3장의 앨범을 냈다. 이들 앨범에선 좀 더 거칠고 격렬한 음악을 구사한다. 그는 이날 공연에서 “제 솔로 곡은 화가 많이 나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드러운 곡도 없진 않다. 아이유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사람 파트2’는 전반부 랩과 감성적인 멜로디의 후렴으로 이뤄진 노래다. 이날 공연에선 아이유가 불렀던 후렴을 아미 관객들이 대신 불렀다. 슈가는 통기타와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며 일부 곡을 노래하기도 했다.

공연 전반부를 마친 시점에서 처음에 나왔던 영상이 이어졌다. 사고로 쓰러진 슈가가 납치돼 어느 방에 갇히는데, 이를 또 다른 슈가가 사주한 듯한 설정이다. 여기서 슈가는 1인 2역을 소화했다. 슈가는 ‘해금’ 뮤직비디오에서도 1인 2역을 연기한 바 있다.

방탄소년단 슈가가 솔로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뮤직 제공

영상이 끝난 뒤 무대에 다시 등장한 슈가는 공연을 이어갔다. 흥미로운 건 무대의 변화였다. 이날 무대는 특이하게도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공연 도중 무대를 이루는 조각들이 와이어에 매달려 높이 치솟으며 자꾸만 사라져갔다. 무대는 중간중간 이 빠진 모양으로 변하며 뒤로 갈수록 작아져갔다.

막판에는 무대가 가운데 한 조각밖에 남지 않았다. 슈가는 그곳에 서서 본공연 마지막 곡 ‘아미그달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미그달라는 사람 뇌 가운데 있는 편도체로,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와 불안에 대한 학습·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편도체는 작은 아몬드를 닮았는데, 마지막 한 조각 무대가 바로 그 편도체를 상징하는 듯했다. 슈가는 이 노래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비롯해 어머니 심장 수술, 아버지 간암 발병 등 과거의 상처를 언급하고는 “어서 나를 구해줘”라고 절규했다. 그러고는 무대에 쓰러졌다. 댄서들이 나와 그를 들어올리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처음과 똑같은 수미쌍관의 구조다.

방탄소년단 슈가가 솔로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뮤직 제공

본공연이 끝난 뒤 영상이 이어졌다. 방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슈가가 커다란 존재가 되어 밖에서 그 방을 들여다보다 불 태우는 장면이다. 편도체에 봉인된 아픈 기억을 들여다보며 이를 작품으로 승화하는 메시지처럼 보였다. 곧이어 슈가가 나와 앙코르 공연을 펼쳤다. 앙코르 마지막 곡 ‘마지막’에서 슈가는 이렇게 노래했다. “배달 알바 중 났던 사고 덕분에/ 시X 박살이 났던 어깨/ 부여잡고 했던 데뷔/ 너네가 누구 앞에서 고생한 척들을 해/ 세이코에서 롤렉스 악스에서 체조/ 내 손짓 한번에 끄덕거리는 수만명들의 고개/ 한이 낳은 나 uh 똑똑히 나를 봐 uh” 상처를 딛고 일어선 자의 포효였다.

이날 공연은 슈가가 지난 4월 미국에서 시작해 일본·타이·싱가포르를 거쳐 서울에서 마무리하는 월드투어의 마지막 무대였다. 모두 10개 도시 25회 공연에서 30만명 가까운 팬들을 만났다. 이날 객석에는 국외에서 온 아미들도 많았다. 방탄소년단 동료 정국·지민·뷔도 객석에 자리해 슈가를 응원했다. 슈가는 “4월 말에 앨범을 내고 투어를 시작해 6월 말까지 왔는데 두달 동안 행복하고 좋은 기억이었다. 다시 무대에 설 때는 7명으로 서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방탄소년단 슈가가 솔로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뮤직 제공

슈가는 앙코르 무대 도중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 깜짝 발표를 하기도 했다. 8월4~6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앙코르 콘서트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체조경기장으로 간다”는 슈가의 말에 팬들은 환호하며 아미밤(응원봉)을 흔들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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