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소설은 고고학과 같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과정”

박세희 기자 2023. 6. 26. 09: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영국 런던.

"아이들에게 전쟁 이야기는 마치 유령 이야기와 같습니다. 너새니얼도 자신의 엄마, 누나, 여자친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죠. 그런데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는 것은 전쟁의 한 면입니다. 전쟁은 거대한 미스터리니까요."

"제게 소설은 고고학과 같습니다. 이 해골이 누구의 것인지, 그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알아내는 과정이 소설이지요. 소설가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알아내는 고고학자와 같습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기억의 빛’ 국내 출간 온다치
황금 맨부커상 ‘잉글리시…’이어
2차대전 배경 여성 · 아이들 다뤄
소설가 마이클 온다치. 사진가 바소 카나르사 제공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영국 런던. 열네 살 소년 너새니얼과 누나를 남겨둔 채 갑자기 부모가 떠난다. 며칠 후 어머니의 짐이 가득한 캐리어가 집 지하실에서 발견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어머니가 나타난다. 너무나 낯선, 냉철한 스파이의 모습으로.

캐나다의 세계적인 작가 마이클 온다치의 신간 ‘기억의 빛’(민음사)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 가족의 여정을 통해, 전쟁의 그늘이 드리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현 부커상)과 맨부커상 수상작들 중 최고의 작품을 선정하는 ‘황금 맨부커상’을 수상한 ‘잉글리시 페이션트’에 이어 다시 한 번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다. ‘기억의 빛’ 역시 지난 2018년 부커상 후보로 선정됐다.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 중인 작가와 최근 전화로 만났다.

한 번 더 전쟁 이야기를 쓴 배경부터 물었다. “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태어났고, 영국에서 10대 시절을 보냈습니다. 템스강 등 런던 곳곳에선 어떤 식으로 전쟁이 벌어졌을까, 하는 상상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전쟁 이야기지만 그 주인공은 그동안 다른 전쟁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다뤄졌던 백인 남성 군인이 아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인도인 용병을 비중 있게 다뤘던 작가는 신간에선 여성 레지스탕스와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책 머리글에 적힌 “대부분의 대전투는 지형도의 주름들 속에서 이뤄졌다”는 문구는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겪어낸 수많은 이들을 향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낸다. 그는 “또 다른 관점, 또 다른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또 다른 관점’은 의외의 효과를 발휘하며 사안의 본질을 밝혀내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전쟁 이야기는 마치 유령 이야기와 같습니다. 너새니얼도 자신의 엄마, 누나, 여자친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죠. 그런데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는 것은 전쟁의 한 면입니다. 전쟁은 거대한 미스터리니까요.”

‘기억의 빛’의 영어 제목 ‘워라이트’(Warlight)는 전시 상황에서 등화관제로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울 때 길을 밝히기 위해 쓰는 희미한 빛을 뜻한다. 이후 영국 정보국 요원이 되는 너새니얼이 어머니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에 대한 은유다.

그는 인터뷰를 하며 ‘발견’(discover)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책을 쓰기 시작할 때엔 아무런 이야기 줄기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 그저 이야기를 ‘발견’해 나갈 뿐입니다. 엄마의 정체를 서서히 알게 되는 너새니얼처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소설이란 ‘고고학’과 같다. “제게 소설은 고고학과 같습니다. 이 해골이 누구의 것인지, 그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알아내는 과정이 소설이지요. 소설가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알아내는 고고학자와 같습니다.”

쇼트폼 등 짧은 길이의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긴 호흡을 요하는 소설 읽기를 버거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작가는 이런 때일수록 소설이 갖는 의미가 더 크다고 했다. “요즘 너무 많은 일들이 빠른 시간 동안 일어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하는 400∼500페이지의 소설을 읽는 것은 어렵고 복잡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인생 자체가 그렇지 않나요? 인생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전 지금 시대의 작가로서, 소설이 의미하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그리고 소설을 읽겠다는 생각이 갖는 의미 말이죠.”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