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지당하신 말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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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대가 있었다.
그들이 초등학교의 이전 버전인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동안 계속 치러졌던 중학교 입학시험이 돌연 폐지되면서 무시험 진학이 가능해졌다.
일부 명문 중학교 출신들이 앞장서 반대 목소리를 냈으나 그뿐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들은 그렇게 '뺑뺑이 1세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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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그런 세대가 있었다. 그들이 초등학교의 이전 버전인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동안 계속 치러졌던 중학교 입학시험이 돌연 폐지되면서 무시험 진학이 가능해졌다. 그처럼 갑작스레 입시 제도가 변경된 배경에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각하'의 아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진위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일부 명문 중학교 출신들이 앞장서 반대 목소리를 냈으나 그뿐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들은 그렇게 '뺑뺑이 1세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유명한 '58년 개띠'들의 이야기다.
이 일이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회자되는 것은 입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민감성이 그만큼 크다는 점을 알려주는 지표로 읽힐 수 있다. 교육과 연관된 대부분의 활동이 대학 입학에 수렴해서 대학 서열화로 귀착되는 우리의 현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런 입시 민감성으로 따지자면 현재가 과거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관련해 나온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수험생과 그 학부모들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해 파장이 인 것이다. 대통령의 이 말이 '쉬운 수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를 비롯해 교육계가 일순간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장 "그래서 '물수능' 확정인가요?" "이런 말을 들으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학부모들과 애들은 어쩌란 말이냐" "아무리 방향성이 맞아도 6월인 지금 할 말은 아니다"라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곰곰이 따져보면 "학생들이 배운 데서 수능 문제를 출제하게 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는 부당하거나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 '지당하신 말씀'을 했는데 왜 이런 소란이 빚어지는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시점이다. 왜 하필이면 수능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기에 이런 지침을 내렸느냐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국가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문제에 대해 공청회 등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대통령이 작정하고, 그것도 직접 나서 불쑥 지시를 내림으로써 혼란을 야기했다는 얘기다. 올해 수능을 치를 학생들은 예전과 같은 기조로 문제가 출제되리라 예상하면서 준비해 왔을 텐데 예기치 않은 변화가 생겼으니 혼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교육과정 밖 수능 출제'에 대해 사교육 업체와의 '이권 카르텔'을 언급한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발언이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보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뜻한 대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사교육 시장은 입시 정책에 대한 불안을 먹고 자란다'는 전문가들의 말도 허투루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일로 인해 이미 교육 시장에 '불안'과 '혼란'이란 폭탄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뿐이다.
이번 사태를 보며 적지 않은 사람이 논란만 불렀던 대통령의 '만 5세 초등 입학' '주 69시간 근무제' 같은 과거 발언을 재소환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말은 당연하게도 언제 어디서든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며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모든 말이 우리 사회에 선순환을 일으키리라는 보장도 없다. 말은 모름지기 아껴서 다듬은 다음에 때 맞춰 내놓아야 쓸모 있고 반듯해진다. 그것이야말로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확실한 '지당하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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