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력 언론, 생산적 토론 가능한 기사 선별해 댓글 열어 [최진순 기고]

최진순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 부소장 2023. 6. 26.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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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 시 회원 등록과 로그인은 필수…별도의 팀이 댓글 퀄리티 엄격히 관리

(시사저널=최진순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 부소장)

"당신의 의견이 우리를 더 좋게 만드는 방법(How Your Comments Make Us Better)." 2021년 9월5일자 뉴욕타임스 뉴욕판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뉴스 댓글을 관리하는 커뮤니티 디렉터가 쓴 것으로 이 매체가 독자 댓글을 바라보는 시각을 상징한다. 커뮤니티팀은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부각시키고 기자들에게 독자의 요청과 관심에 어떻게 부합할 수 있는지 통찰력을 제공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 신문은 모든 기사에 댓글란을 열지 않는다. 독자의 경험담이나 의견이 필요한 기사에 한정한다. 전체 기사의 약 10%를 대상으로 게시 이후 일반적으로 24시간만 댓글을 허용한다. 댓글은 바로 게시되지 않고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나쁜 댓글을 1차적으로 걸러낸다. 그 후 커뮤니티팀 소속 편집자가 최종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혐오성·비방성·공격성·선정성 글은 배제한다.

기자가 직접 소통하며 좋은 댓글 적극 키워

댓글 작성자가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름과 지역을 공개한다. 일단 제출된 댓글은 변경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 댓글 서비스는 편집자 추천(NYT Picks), 독자 추천, 작성 기자 등이 댓글을 단 리플라이(Replies), 전체 댓글 등으로 구분해 제공한다. 양질의 댓글을 노출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영국 가디언은 중재팀(moderation)이 뉴스 댓글을 관리한다. 일단 댓글을 작성하려면 회원 등록과 로그인을 해야 한다. 뉴욕타임스와 마찬가지로 일부 기사에만 댓글 작성이 가능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댓글란이 닫힌다. 댓글의 최신성을 유지하고 독자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물리적 시간을 감안한 것이다.

명예훼손 우려가 있거나 뉴스 속보 등 편집상 이슈가 있는 콘텐츠에 대한 댓글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운영자는 통찰력·지식·관점 측면에서 더 건설적인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기사를 선별해 댓글 기능을 설정한다. 좋은 댓글은 댓글란 상단에 가디언픽(Guardian Pick)의 형태로 별도 노출한다.

세계 최대 공영방송사 BBC는 로그인을 한 독자가 댓글을 제출하면 중재 시스템으로 검증한 후 최종 게시한다. 기사 제목 아래 또는 옆에 댓글 아이콘이 표시되는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있다. 댓글 게시 규칙은 '무관용'을 적용한다.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허위정보·개인정보 보호를 위반하는 등의 불법적인 게시물은 노출되지 않는다. 댓글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신고(댓글 하단에 신고 버튼)하거나 사전에 운영자의 발견 또는 자동 필터링으로 걸러지지 않는 한 공개된다.

워싱턴포스트의 댓글 운영 목표는 기사나 칼럼에 대한 독자의 독특한 관점을 배우는 데 있다. 댓글은 구독자 전용 기능이다. 구독자로 인증되면 댓글을 게시할 수 있지만 운영자가 검토할 수 있다. 댓글 노출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기사 게시 후 72시간 내에 댓글을 달 수 있다. 작성자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다른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댓글은 한 번 등록되면 작성자가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없다. 댓글을 게시한 후 논란을 일으키고 슬그머니 삭제하는 행위(ring-and-run)를 막기 위해서다. 워싱턴포스트는 독자의 좋아요, 답글 및 특정 독자의 이전 기록을 반영해 '추천 댓글(featured comments)'로도 노출한다. 이때 기사 내용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담도 우대한다.

반면 뉴스 댓글에 소극적인 언론사들도 있다. CNN은 댓글을 아예 운영하지 않는다. CNN은 2014년 8월부터 대부분의 기사에 대한 댓글을 비활성화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당시에는 토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기사, 기자와 편집자가 소통에 참여하고 중재할 수 있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댓글을 열었다. 이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 계정에서 정기적인 토론을 여는 방향으로 틀었다.

로이터도 같은 해 11월 대부분의 댓글을 닫기 시작했다. 로이터는 "뉴스를 둘러싼 토론이 소셜미디어 등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국 NPR도 2016년 8월 댓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해외 언론사들은 대부분 생산적 토론이 가능한 기사를 선별해 댓글을 허용한다. 또 좋은 댓글은 별도로 구분해 표출한다. 인공지능 필터링을 쓰지만 최종적으로 사람 기자가 품질을 관리한다.

뉴스 댓글을 포기하는 매체들은 관리와 중재의 어려움을 꼽았다. 실제로 댓글은 엉뚱한 사람들이 노는 놀이터로 전락하기도 한다. NPR이 댓글 운영을 끝내면서 밝힌 바에 따르면 댓글을 남긴 독자는 전체의 0.0003%에 불과했다. 더구나 법적 이슈는 언제나 터질 수 있다. 탐사보도에 치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익한 기사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논리였다.

유의할 대목은 해외 언론사가 뉴스 댓글란을 접을 때도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는 방향에 선다는 점이다. 또 독자와의 소통이나 관계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대안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댓글을 중단한 매체의 독자 접점은 팟캐스트와 뉴스레터 같은 구독 서비스로 점점 대체됐다. 댓글 서비스의 부작용이나 생태계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만큼 일방적인 자기합리화는 아닌 것이다.

가디언픽의 댓글 상위 노출 ⓒ 최진순 제공
뉴욕타임스의 팬데믹 육아 댓글 ⓒ 최진순 제공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 섹션 댓글 ⓒ 최진순 제공

댓글은 기술과 수치만으로는 안 돼

포털 다음은 6월초 뉴스 댓글을 기사 게재 후 24시간만 제공하는 실시간 채팅 방식으로 개편했다. 네이버는 최근 댓글 이용이 제한된 사용자의 경우 프로필에 해당 상태를 노출하는 등 운영 정책 변경을 예고했다. 이에 앞서 2020년 연예·스포츠 뉴스 댓글을 폐지했다. 또 필터링 인공지능 도입, 댓글 정책 이용자 패널, 댓글 작성 개수 제한, 댓글 정렬 방식 변경, 댓글 작성 이력 공개, 댓글 접힘 등 댓글 정화에 나섰다.

하지만 실제 댓글 품질이 나아졌다고 단정할 근거 자료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줄곧 받았다. 포털이 뉴스 댓글 서비스를 주도한 결과도 비참했다. 한국 언론사들이 뉴스 댓글에 대해 무관심, 무신경, 몰이해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그나마 활성화된 일부 언론사 댓글란조차 소수의 독자가 혐오적이고 선동적인 게시물을 쏟아내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아직은 댓글 작성자의 대표성 부재, 댓글 내용의 정보성과 의견 다양성 미흡 같은 문제점을 덜어내지 못한 상태다. 그래도 뉴스 댓글 읽기 동기는 '여론 확인' '해석 지침' '비판 감시' 같은 저널리즘의 뿌리를 품는다. 해외 혁신 뉴스조직 역시 댓글 서비스의 최종 귀착지를 숭고한 저널리즘과 농밀한 독자 관계로 상정한다. 댓글을 수치로만 계량화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저널리즘 품질 개선의 밑거름으로 다루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독자가 더 큰 발언권을 갖는 제품 생산을 목표로 할 때 더 중요한 것은 뉴스룸이 독자가 중요한 정보(선호도, 습관, 정보 소비 방식)를 가진 사람으로 대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독자의 의견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문화에서 결국 저널리즘의 미래가 그려질 것이라는 세기의 혁신 언론사의 제언이다.

최진순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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