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모내기에 농민들이 뿔난 이유
대통령이 모내기를 했다. 6월7일 충남 부여군에서였다. 품종마다 다르지만, 통상 6월 초까지가 모내기 적기임을 감안하면 다소 늦은 모내기다. 주요 언론에는 대통령의 모내기 풍경이 훈훈하게 보도됐지만, 그 주변에서 농민들의 격앙된 시위가 벌어졌다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농민들이 모인 곳은 부여군 비정3리 마을회관 앞. 대통령 일행이 모내기 행사장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한국농정신문〉에 따르면, 부여경찰서장이 직접 나서 농민들과 몸싸움을 하며 부딪쳤다. 도로변에 있던 농민들은 경찰에 밀려 마을회관 앞으로 자리를 옮겼고, 경찰은 대통령 일행이 현수막과 피켓을 볼 수 없도록 도로변에 경찰버스를 세웠다. 곧이어 윤석열 대통령 일행이 지나갔고 농민들은 일제히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한창 농번기에 농민들이 왜 일손을 멈추고 대통령에게 항의했을까. 이날 윤 대통령이 찾은 곳은 가루쌀 생산단지다. ‘가루쌀’은 우리가 매일 먹는 쌀과는 다르다. 농업용어사전에서는 가루쌀을 ‘가루를 내기에 적합한 쌀’이라고 설명한다. ‘분질미’라고도 부른다. 쌀 알갱이를 손으로 비비면 쉽게 부서질 만큼 전분 구조가 성겨 식탁에 오르는 쌀밥이 아니라 가공용으로 적합하다. 과자, 빵 등 용도로 쓰여 밀가루의 대체재로 주목받는 쌀 품종이다. 모내기 적기가 6월 말~7월 상순일 정도로 일반 벼에 비해 시기가 늦다.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는 가루쌀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일반 쌀로 가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두 시간 물에 불린 후 빻는 ‘습식제분’이 필수였다. 그러나 가루쌀은 전분 구조가 성글게 배열되어 있어 물에 불릴 필요가 없다. 비용과 환경적 측면에서 뛰어난 품종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가루쌀 홍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농정정책의 최대 현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황근 농림부 장관은 가루쌀을 ‘신의 선물’이라고까지 부르며 지난해부터 보급 사업을 독려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밀가루 값이 급등하면서 식량 위기를 걱정했던 한국으로서는 가루쌀이 미래의 먹거리라는 것이다.
눈여겨볼 것은 가루쌀이 윤석열 대통령이 4월4일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의 ‘대안’ 격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양곡관리법의 핵심은 쌀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논에 쌀 말고 다른 작물을 재배할 경우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쌀의 일시적 과잉은 의무 매입으로, 구조적 과잉은 타 작물 재배 지원으로 잡겠다는 복안이었다.
가루쌀 사업은 결국 폐기된 양곡관리법 가운데 ‘논에 타 작물 재배 지원’ 사업을 특화한 것이다. 농민 처지에서는 그리 달가울 리 없는 정책이다. 쌀 의무 매수는 거부한 정부가 애초에 양곡관리법에도 담겼던 타 작물 재배 지원 대책을 들고나와 생색을 내는 꼴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윤 대통령의 모내기에 분노한 이유다.
문제는 더 있다. 가루쌀은 아직까지는 완전히 ‘검증’된 품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습식제분이 필요치 않은 점 등은 장점이지만, 정부의 바람대로 ‘밀가루의 대체재’가 되기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쌀에는 밀에 들어 있는 글루텐이 없기 때문이다. 글루텐은 밀가루 조직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쫀득한 식감을 만들어내는 성분이다. 글루텐이 없으면 빵이나 과자로 가공하기에 부적합하다.
‘가루쌀 부적합’ 의견 냈던 업계의 변신
지난해 10월 농림부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의원은 대한제과협회, SPC, CJ제일제당 등이 진행한 가루쌀 테스트 결과를 공개했다. 대한제과협회는 가루쌀로 식빵과 바게트를 만들었는데 ‘가루쌀은 팽창이 적어 가공 시 부적합하다’라고 평가했다. 카스텔라를 만든 SPC는 ‘축축한 식감, 쌀가루 특유의 텁텁함’ 등과 함께 ‘노화 진행이 빨라 유통기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밀가루에 가루쌀을 일부 섞어 만두피를 만든 CJ제일제당은 ‘가루쌀을 섞은 만두피는 신장성이 부족해 잘 찢어진다’라고 평가했다. 가루쌀 비중을 높이려면 글루텐 등 보완제를 첨가해야 해서 원재료 비용이 상승한다고도 우려했다. 이 테스트는 지난해 6월 농림부가 각 업체에 의뢰한 것이다.
의아한 점은 지난해 가루쌀에 부정적 평가를 냈던 대한제과협회 등 제과·제빵 업계가 최근 가루쌀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제과협회의 경우 5월30일 ‘가루쌀 신메뉴 개발 품평회 및 시상식’을 개최하는 등 가루쌀로 만든 식빵과 카스텔라 보급에 뛰어들었다.
〈시사IN〉은 대한제과협회에 질의서를 보내 ‘지난해 협회의 자체 테스트 결과 부정적 평가가 나왔음에도 가루쌀 사업을 진행하는 이유’ 등에 대해 물었지만, 협회 측은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협회 관계자는 신메뉴 개발 등에 관한 비용을 농림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고 밝혔다. 농림부 관계자는 “지난해 결과는 너무 소량의 원료만을 가지고 테스트한 것이라 문제가 있었고 구운 과자 등에서는 적합 판단이 나왔다. 제조기술 개발을 통해 단점을 보완하면서 가루쌀을 원료로 쓰는 제과점도 크게 늘고 있다. 가루쌀 사업이 쌀 수급 안정에 기여하리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6월14일 농림부는 ‘가루쌀을 활용한 쌀 구조적 수급 불균형 해결’ 정책이 제12회 한국정책대상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 상은 정책학 분야 국내 최대 학회인 한국정책학회가 수여하는 상이다. 구조적인 쌀 수급 불균형 개선, 식량자급률 제고 등 정책의 파급 효과가 크고 국민 편익 증진에 기여했다는 점이 선정 이유였다.
정부는 올해부터 가루쌀을 재배하는 농가에 1㏊당 100만원의 직불금을 지원한다. 기존 기본형 직불금에 더해 추가로 지급하는 돈이다. 4월26일 농림부는 올해 농가에서 가루쌀 재배를 신청한 면적이 총 2200㏊라고 밝혔다. 전체 전략작물직불제 해당 면적인 13만2600㏊의 약 1.6% 수준이다. 전략작물직불제는 논에 벼 대신 밀, 사료작물, 논콩, 가루쌀 등을 재배하면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학계가 인정한 정책이 현장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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