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통신]'그냥 쉬어요' 구직 포기 청년의 항변…"저 열심히 살았어요"
"열악한 사업장에 청년 못보내…수평적 문화 필요"
[편집자주]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MZ세대'는 어느덧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정치권에선 'MZ표심' 잡기에 골몰하고, 학계에서는 'MZ세대 담론'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정작 MZ세대들은 "우리는 오해받고 있다"고 하소연합니다. 그 오해와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뉴스1 사회부 기자들이 나섰습니다. MZ세대 최전선에 있는 90년대 중반생 기자부터 '젊은 꼰대' 소리 듣는 80년대생 기자까지 'MZ통신'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뉴스1) 한병찬 원태성 기자 = "노력하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대외활동, 토익, 학점, 인턴 등 대학생 때 열심히 살았어요. 자존감도 낮아져서 올해에는 원서도 넣지 않고 그냥 쉬고 있어요."
26일 동갑내기 지인 박모씨(28)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라곤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이 돼가는 박씨는 "중소기업에도 취직해봤지만 원하는 직장과 업무가 아니어서 금방 떠났다"며 "게임만 하면서 지내는 지금 부모님 눈치가 보인다"고 한숨을 내쉬었죠.
최근 구직 활동, 진학 준비에 나서지 않고 '그냥 쉬는' 2030 청년이 늘고 있습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등에 따르면 지난달 '그냥 쉬었다'는 20대 청년이 35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32만1000명보다 3만6000명 증가했습니다.
지난 4월에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가 20대 38만6000명, 30대 27만4000명을 기록했습니다. 두 세대를 합치면 66만명에 이릅니다.
'쉬었음'이란 일할 능력이 있지만 치료·육아·가사 등 구체적인 이유 없이 막연히 쉬고 싶어 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 "준비 덜 됐다고요?…아뇨, 맞는 일이 없어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준비가 덜 돼서는 아닐 것입니다. 박씨뿐 아니라 많은 청년이 이미 고스펙을 갖췄습니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손모씨(27)는 "서울 중위권 대학의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는데 특성상 자격증만 따면 언제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서도 "취업 얘기만 하면 막막하지만 아직은 원하는 것을 찾으며 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치도 이를 증명합니다. 지난달 20대 비경제활동 인구 중 취업준비(33만1000명), 취업을 위한 학원·기관 통학(11만3000명)보다 '쉬었다'는 청년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청년들은 "내게 맞는 일자리가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서울의 4년제 공대를 졸업한 오모씨(28)는 대기업 외에는 가고 싶은 양질의 회사가 없다고 말합니다. 오씨는 "다른 기업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며 "지난해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졸업 후에도 삼성전자만 지원할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니던 직장에 신물을 느껴 조기퇴사한 뒤 쉬는 청년도 많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직업 군인으로 4년간 복무한 김모씨(29)는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적은 월급, 부조리를 견뎠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아 전역을 결심했다"며 "일단 쉬면서 진로를 고민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문직으로 4년을 일한 김모씨(32)도 "1년간 준비한 끝에 원하던 직장에 취업했지만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결국 그만뒀다"며 "4년간 일하느라 쉬지 못해 올해는 해외여행도 다녀오며 쉴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112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은 2030세대의 조기퇴사 이유로 '개인의 만족이 훨씬 중요한 세대' '평생직장 개념이 약한 환경에서 성장' '참을성 없음' '시대의 변화에 조직문화가 못 따라감' 등을 언급했습니다. 청년의 달라진 가치관과, 이와 동떨어진 기업문화의 합작품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낮아진 청년들의 자존감일 것입니다. 높은 임금과 복지를 원해 대기업 취업을 선호하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 취업난까지 겹치며 구직을 포기하는 청년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내가 너무 밉다"면서도 "열심히 했는데 이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 "눈 낮추라 말하기 전에…합리적·수평적 문화 확산됐으면"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이유에 대해 '복합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였다면 충분히 지원할 만한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 지원하지 않고 조금 더 기다려 가고 싶은 직장을 가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부모님의 지원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정상적·억압적 직장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는데 젊은 세대는 그것을 견디기 어려워 한다"면서 "사람을 존중하고 합리적·수평적 문화가 확산해야 니트(NEET·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족이 다시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청년 채용 정책이 많이 줄었고 다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취업이 쉽지 않거나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을 위한 정책으로 그들이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눈이 높아 제조업이나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다"는 일각의 주장에 김 교수는 "미래를 맡길 수 없는 열악한 사업장으로 청년을 내보낼 수는 없다"며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직장으로 눈을 낮추라고 할 게 아니라 근무 환경과 수준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습니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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