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괴담과 과학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과학자도 돌팔이로 몰려… 피해 당사자가 반격 나서야
한 음모론 연구자가 피실험자들에게 “연기(煙氣) 감지기가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했다. 한쪽 그룹엔 ‘비밀 정보’라고 했고, 다른 쪽엔 ‘널리 알려진 정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비밀’이라고 할 때 더 잘 믿었다. 과학 철학자 매킨타이어의 책에 소개된 내용이다. ‘숨겨진 진실’이라는 망토를 두른 ‘괴담’은 ‘과학’보다 전파 속도가 6배 빠르다. 오래 전 마크 트웨인은 “그가 속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그를 속이는 일이 더 쉽다”고 했다.
괴담은 약한 곳을 파고든다. 건강과 먹거리보다 민감한 영역은 없다. 후쿠시마 방류수가 그렇다. 불붙이기 쉽다. ‘친일몰이’로 기름까지 끼얹을 수 있으니 괴담 세력들에겐 한마디로 ‘찬스’다. 과학적 진실이 드러나면 “의혹을 제기했을 뿐” “경종을 울렸을 뿐”이라고 발뺌한다.
괴담 세력은 스크럼을 짠다. 광우병 소고기, 사드 참외, 후쿠시마 생선, 이쪽 괴담 세력들은 대부분 얼굴이 겹칠 것이다. 정치적 속셈이 같기 때문이다. 국민을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생기는 정부 비판 분위기를 자기 쪽 진영의 세를 불리는 데 갖다 쓴다. 국민 건강이라는 민감 문제를 ‘반미-반일’ 프레임 속에 버무려넣는 것이다. 소고기 참외 생선이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면, 절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괴담은 말이 짧고 과학은 길다. 괴담은 거두절미한다. 방류수에 대해 “네가 마실래?”하고 들이민다. 자극적으로 선동한다. 과학 진영은 ‘음용(飮用) 기준에 맞는다면 마시겠다’는 길고 어려운 문장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먹는물 수질기준 및 검사 등에 관한 규칙’(시행 2021.9.16.)을 찾아본들 소용없다. 이미 ‘마실래’가 국민의 과학적 인식을 흔들어버린 뒤다. 괴담 세력은 과학을 이념으로 만드는 데 이골 난 프로들이다.
괴담은 정치 양극화를 먹고 자란다. 저들은 과학 지식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오로지 정치적 진영에 따라 괴담을 생성 유포 소비한다. 그들에게 과학을 제시하면 정체성에 상처 받은 듯 반발한다. 체리 피킹과 확증 편향에 찌들어 사이비 종교 신자와 비슷하다. ‘코로나 백신에 들어있는 티메로살 성분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괴담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백신 거부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괴담과의 싸움에 정부가 나설 경우 너무 힘겹다. 괴담 자체가 “정부가 비밀리에 하는 일”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는 정부가 비밀리에 비행기의 꼬리구름에 독극물을 섞어 뿌리고 있다는 ‘컴트레일 음모론’이 있다.
괴담에는 과학자도 힘에 부친다. 대한약학회 방사성 의약품학 분과 학회장은 “나는 처리된 후쿠시마 오염수를 가져오면 방류 농도로 희석해서 마시겠다”고 했다.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한 후 100년이 지나도 남해 바다에 단 한 방울도 오지 않는다, 교수직을 건다”고 했다.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수증기의 형태로 방출하는 방법도 있는데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괴담 신봉파들은 안 믿는다. 민주당 대표가 이미 과학자를 “돌팔이”라고 불렀다.
괴담에는 직접적 피해 당사자가 있다. 후쿠시마 방류수의 경우 수산물 소비자, 관련 요식업자, 유통업자, 어민들이다. 절박한 그들이 앞장서야 한다. 이들이 먼저 수산물 파동의 책임이 과학에 있는지 괴담에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괴담을 끝장내자’는 성명을 내고, 시위를 벌이고, 서명 운동도 하고, 괴담 세력의 본거지를 항의 방문해야 한다. 엊그제 한국경제 신문 ‘현장에서’ 칼럼은 주문진 좌판 풍물 시장 상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민주당에 괴담도 그만 퍼뜨리라고 해주세요. 장사가 안 돼서 일 다 접게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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