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스피노자는 ‘사과 명언’을 남기지 않았다
6월이면 문득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떠오르고, 그를 생각하면 그가 남겼다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라는 말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맥아더의 명언’으로 알려진 이 말은 그가 지어낸 것이 아니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들은 군가의 한 소절이다.
많은 사람이 ‘누가 남긴 명언’이라며 인용하는 문장에는 이런 것이 많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는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이 말을 처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구글에 Spinoza(스피노자)와 Apple(사과)을 함께 검색하면 아무런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스피노자가 남긴 말이 아니라는 증거다. 여러 영어 사이트에서는 스피노자가 아니라 독일의 종교개혁가 루터가 남겼다는 얘기부터 루터의 생애 이전에도 있던 문장이라는 견해 등 ‘설’이 분분하다.
우리나라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겼다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처음에 누가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했다거나 미국 작가 데이비드 매컬러가 남긴 글에 비슷한 문장이 보인다는 주장 등이 난무한다.
이처럼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상식과 지식에는 허점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자신이 아는 지식과 상식이 세상의 전부인 양 소리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누구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레 말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의 한없이 가벼운 입이 국민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한편 맥아더 장군이 인용한 문장 속의 ‘노병’은 “늙은 병사” 또는 “경험이 많아 노련한 병사”를 말한다. 계급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장병’은 “장교, 부사관(하사·중사·상사·원사), 병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사병’은 “장교가 아닌 부사관과 병사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사병은 때론 부사관 아래의 ‘병사’만을 이르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 말은 계급에 따라 가려 써야 한다. 이는 <표준국어대사전>이 밝히고 있는 우리말 상식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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