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03] 심해의 최후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3. 6.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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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에 가라앉은 타이태닉호의 잔해를 구경하려고 바다 밑 4000미터까지 내려갔던 잠수정 ‘타이탄’의 사고 뉴스. 사고를 당한 5명은 모두 수퍼 리치, 갑부라고 한다. 왜 갑부들이 심해에서 죽어야만 했는가?

“5000억원 정도가 있으면 비행기도 사고, 저택·요트·수퍼카 등을 모두 살 수 있다. 그 이상 돈은 필요 없다. 살 것이 없으니까. 그런데 왜 당신은 종업원 수만 명을 관리하면서 돈을 더 벌려 하고, 골치 아프게 사는가, 한가하게 살지?” 몇 년 전 필자가 어느 재벌 오너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재벌 오너가 미국의 갑부와 밥 먹다가 들은 충고라고 하면서 전해준 이야기다.

조 단위 부자가 유유자적하면서 한가하게 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한중락(閑中樂·한가한 즐거움)은 도인이 되어야 가능하다. 내가 만나본 서울 강남의 수천억원대 부자 대부분이 수면제를 먹는다. 법정 소송이 평균 3~4건씩 걸려 있기 때문이다.

수조원대 부자가 되면 모든 물질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자기 앞에 와서 굽신거린다. 이런 상태가 되면 일반적 오락은 전혀 와 닿지 않고, 남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강력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것 같다. 강력한 자극이란 결국 목숨을 거는 놀이다.

물질적 충족은 반드시 영적 빈곤을 초래한다. 양(陽)만 추구하다 보면 음(陰)이 고갈된다. 이게 자연법칙이다. 영적인 빈곤 상태의 수퍼 리치가 센 자극을 계속 찾다 보면 대서양의 4000미터 심해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동양에서는 바다 밑에 용궁(龍宮)이 있다고 믿었다. 용궁에는 용왕이 산다. 타이탄에 탑승했던 갑부 5명은 용궁에 가서 용왕을 만나려고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해석된다. 용궁은 돈 있다고 가는 데가 아니다.

용궁 이야기가 나오니까 신라의 원효 대사가 생각난다. 이 양반은 용궁에 갔다 온 사람이다. 원효가 쓴 명저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의 저술 배경에는 ‘바닷속 용궁에서 이 책의 골격을 가져온 것’이라고 나온다. ‘현재 이 상태로 우주는 금강삼매에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것이 원효의 관점이다. 이 상태에서 더하고 뺄 것도 없다는 말이다. 철 들고 생각해보니 용궁은 인간 내면의 무의식이었다. 인간의 8식(識), 무의식 저 깊숙한 곳은 심해처럼 칠흑같이 깜깜하다. 원효가 들어간 심해의 깊이는 1만미터가 넘었을까? 결국 잠수정 타이탄은 용궁으로 들어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극락정토로 갈 때 타고 가는 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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