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대재해는 백조일까, 흑조일까
17세기까지 서구에서는 세상의 고니가 모두 흰 것으로만 여겼다. 한데 18세기 한 조류학자가 호주 남부에서 깃털이 온통 검은 백조, ‘블랙스완’을 발견했다.
블랙스완이란 이름을 널리 알린 사람은 레바논 출신 미국 경영학자이자 위기분석 전문가인 나심 니컬러스 탈레브이다. 그는 2007년 자신의 저서 <블랙스완>에서 예견할 수 없었고 당연히 존재할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믿었던 사건이나 일에 블랙스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책이 나온 다음해인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이 사건이 전 세계를 뒤흔들면서 그의 블랙스완 이론과 책이 큰 주목을 받았다.
2023년 대한민국은 산업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중대재해 예방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과 전문가들은 사고 예측이 어렵다고들 한다. 이 말이 맞으면 중대재해는 블랙스완, 즉 흑조가 된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일터 사고·사망을 줄이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연간 사망자 800~900명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면 중대재해의 흑조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과거 산업현장에서 엄청난 수의 근로자가 사고로 숨져간 영국, 독일,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이 산재왕국에서 탈출해 지금은 우리의 10분의 1 내지 4분의 1 수준으로 낮춘 역사적 사실을 보면 중대재해는 흑조가 아니라 백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근대 산업재해의 원조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은 오늘날 대표적인 산업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영국 산업안전보건청 산하 안전보건연구원을 방문해 안전보건 수준을 살펴보았다. 영국은 우리가 올해부터 본격 추진한 위험성 평가 기반의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오래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실은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영국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뿐만 아니라 산재사고와 직업병 발생과 관련해 휴먼에러, 즉 근로자와 사업주의 부주의, 실수 등이 왜 일어나는지를 파악해 제도 개선과 산재예방 시스템에 반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간행동·심리과학자와 함께 연구하고 있었다. 정말 부러웠다.
영국의 일터 안전 수준은 우리와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874명이 일터에서 사고로 숨졌다. 하루 평균 2.4명, 사고사망만인율은 2018년 0.51‱(2022년 0.43‱)이다. 영국은 하루 평균 0.3명이 숨진다. 사고사망만인율은 우리의 10분의 1가량인 0.055‱(2018년)이다. 엄청난 격차다.
영국이 이런 수준까지 도달한 것은 과학을 기반으로 한 산재예방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사고가 영국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오는 7월은 산업안전보건의달이다. 7월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전 국민이 산업안전보건에 관심을 쏟는다면 분명 일터 안전이 뿌리내려 국민이 안심하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안종주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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