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아무리 짓밟더라도
성소수자를 노골적으로 혐오하고 배제해도 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정치인들의 성소수자 혐오표현은 일상이 되었고, 성소수자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민원, 검열, 항의 등 물불 가리지 않고 행사 자체를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 사건 또한 많아지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서울시청 광장 사용이 불허됐다, 같은 날 이 광장에선 CTS 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가 개최될 예정이다. 인천여성영화제는 인천시로부터 성소수자 관련 영화를 상영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항의가 잇따르자 동성애 영화와 탈동성애 영화를 모두 상영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성교육 강사를 교체하라는 항의 민원에 강의가 취소되었음을 뒤늦게 확인했다.
관련 부처와 지자체장들은 혐오성 민원에 적극 대처하기는커녕 오히려 차별의 편에 서서 성소수자를 쉽게 배제하고 있다. 성소수자는 아예 보이지도 말라는 결정과 통보가 잇따르고 있어 분노가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이들 주장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핑곗거리 하나가 있다. 바로 성소수자 관련 행사가 청소년에게 잘못되고 왜곡된 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건전하고 바른 성문화를 접하게 해야 한다는 충고 또한 빼놓지 않는다. 회복이라는 단어가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이라는 규범에 청소년을 가둬두려고만 하고 있다. 다름은 잘못된 것이고, 바른길로 가야 한다는 일방적인 논리 속에 인권의 가치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청소년은 자신의 성정체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탐색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정을 하든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더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정서적으로 고립시키고, 괴롭힘을 정당화하고 있다. 성정체성을 철저히 숨겨야 안전하다고 말하는 그들의 ‘회복’에 청소년 성소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를 부정하는 폭력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짓밟아도, 성소수자 존재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서울시청 광장을 벗어나 더 넓은 거리로 나와 시민들을 만날 것이고, 인천여성영화제는 인천시의 사전검열과 보조금을 일절 거부하고 시민들의 힘으로 개최될 것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 역시 부당한 강의 취소 결정에 항의하며 취소한 교육을 즉각 재개하라는 요구를 서울시교육청에 전달했다.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는 과정이야말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나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긍정의 신호다. 더 넓은 광장에서 서로 연대할 때, 고립되지 않을 수 있다. 회복은 바른길이 아닌 혐오의 다른 말임을, 6월 성소수자 자긍심의달(Pride Month)에 더 크게 외쳐본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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