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의 나락 한 알] 김종철은 이렇게 말했다

기자 2023. 6. 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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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은 ‘녹색평론’을 창간한 김종철 선생의 3번째 기일이었다. 마침 요즘 방사능 오염수 투기 논란이 뜨거울 때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후에 선생이 쓴 글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정부와 핵산업 관련자들은 언제나 방사능 피해를 축소하고 은폐한다.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바닷물에서 희석되면 아무 걱정할 것 없다는 설명은 과학적이라기보다 다분히 정치적”이다. 오염수 논쟁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과학적’이란 말이 ‘정치적’으로 들리는 건 일본과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 탓이다. 자연의 질서와 현상은 ‘객관적’이지만 그것을 탐구하는 과학은 객관적일 수 없는 사람과 기관이 수행한다. 과학적 검증에 신뢰가 중요한 까닭이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문제의 당사자인 일본 정부나 핵발전 진흥본부 격인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애초에 객관적인 과학적 검증을 할 자격이 없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오염수 문제를 방관해 오더니 갑자기 일본에 허수아비 ‘시찰단’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오염수에 대한 의문과 비판을 괴담과 선동으로 몰면서 정작 국민의 불신을 키운 것은 자기들이라는 사실은 외면한다. 이 현안에 비판적인 과학자와 예상되는 직접 피해자가 참여하지 않는 ‘그들만의 검증’은 결코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의혹과 불안은 커질 뿐이다.

사고 초기에 “대기와 해양으로 방출된 방사성 물질도 엄청난 것이지만, 앞으로도 기약 없이 이 상황이 계속될 것을 생각하면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지금 일본은 세계를 향하여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이미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바다로 들어갔다면 이제라도 더 이상의 오염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상 국가가 할 일이다. 사람과 뭇 생명의 안전이 달린 바다는 과학적 검증을 할 게 아니라 최대한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오염수가 안전한지 논쟁할 게 아니라 무엇이 가장 안전한 처리 방법인지 물어야 한다. 더 안전한 대안이 있는데도 비용이 저렴하다고 바다 투기를 강행하는 것은 세계를 향한 또 한 번의, 이번에는 의도적인, 테러다.

“오염수, 과학 넘어 윤리적 문제”

“독일이… 부러운 것은 원전 문제를 단지 안전성 문제만 아니라 윤리적 문제로 보는 자세입니다.” 설혹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해도, 놓쳐서는 안 될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개인의 쓰레기를 공유지에 버리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의 어민은 오염수 투기로 자신들의 생업인 어업이 끝장나리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검증 결과만 괜찮다면 수많은 소중한 삶의 터전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발상은 과학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국가 폭력이다.

다시 읽어본 선생의 글들은 10년 이상 지났지만, 오늘도 시의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문제의 근본에 천착한 덕분일 것이다. 선생은 근대문명 자체가 “희생의 시스템”이라며 “약자를 희생시키는 구조적인 악행”을 자행하는 사회 구조와 생활양식의 근본적 변화를 주장했다. 핵발전은 “생명과 평화와 민주주의 원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가장 광포한 폭력의 기술”이며 “단기적 이윤 추구 외에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는 자본의 논리와 자기팽창 욕망에 사로잡힌 국가의 논리, 그리고 근대적 과학기술의 결합에 의해 태어난 끔찍한 요괴”다. 그래서 탈핵운동은 단순한 에너지 전환을 넘어 “자본주의의 논리에 갇혀 있는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돼 기후운동과 함께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자본의 폭주를 막는 대안의 길을 열어야 한다.

환경도, 복지도, 교육도 모두 시장과 산업으로 몰아세우며 자유를 빙자해 효율과 이윤만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등장으로 그동안 힘들게 일구었던 소중한 것들이 빠르게 퇴행하고 있다. 이 참담하고 당혹스러운 현실을 보며 ‘녹색평론’ 창간사에서 김종철 선생이 던졌던 물음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희망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깨우는 것이다. 희망은 인간 내면에 깊이 새겨진 새로움을 향한 역동이기에 우리가 희망을 물으면 희망이 생겨난다. 다만 길을 찾기 어려운 현실이라, 우리가 함께할 때만 희망을 묻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동안 ‘녹색평론’이 해왔던 역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함께 희망을 물으면 변화의 물결

쓰레기가 넘쳐나는 세상에 이제는 방사능 오염수까지 쏟아질 판이다. 그래도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삶의 도리다. 그런다고 세상이 변할까, 주저할 것도 없다. 해야 할 것이라면 가능성을 묻지 말고 그냥 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할 때, 반드시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렇게 함께 희망을 물으면 잔잔하지만 힘찬 변화의 물결이 일어난다. 선생이 ‘녹색평론’으로 보여주고 떠난 것도 이런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김종철 선생의 영원한 안식, 그리고 최근 계간지로 돌아온 ‘녹색평론’과 새로 시작하는 ‘김종철연구소’의 건승을 빈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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