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지 않는 ‘임신중단’ 갈등…내년 미 대선 ‘뜨거운 감자’로

김유진 기자 2023. 6. 2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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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대법원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1년 혼란 계속
충돌하는 시위대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24일(현지시간) 임신중단에 찬성하는 시민과 반대하는 시민이 확성기를 들고 자신의 주장을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판결 후 14개 주서 제한 조치 확산…여성 인권·건강 큰 위험
주요 도시 곳곳 찬반 집회, 바이든·펜스 등 대선 주자도 대립

미국 연방대법원의 임신중단권 폐기 1주년을 맞은 24일(현지시간) 미국 곳곳에서는 대법원 결정이 야기한 후폭풍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이 연출됐다. 주요 도시마다 임신중단 문제를 둘러싼 찬반 집회가 열렸고,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 양당 대선 주자들은 극명하게 다른 입장을 내놨다. 지난 1년 사이 여성들의 임신중단 접근권이 크게 후퇴한 가운데 2024년 대선에서도 이 문제가 쟁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지난해 6월 임신중단을 헌법적 권리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한 연방대법원과, 전국적인 임신중단 금지를 추진하는 공화당을 동시에 강력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이 연방 차원의 임신중단 금지, 임신중절약 시중 퇴출을 추진하는 것을 가리켜 “극단적이고 위험하며 대다수 미국민의 뜻과 배치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는 계속해서 출산 여성의 건강 접근권을 보호할 것”이라며 “의회가 로 대 웨이드에 명시된 (임신중단권) 보호를 연방법으로 온전히 복원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수도 워싱턴을 비롯해 시카고, 뉴욕, 필라델피아 등 대도시와 각 주에서는 연방대법원 결정에 대한 찬반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면서 연방대법원 결정으로 갈라진 미국 사회를 여실히 드러냈다. 임신중단권 옹호 시민단체들은 워싱턴 유니온 기차역 앞 광장에서부터 연방대법원까지 행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여성에게 그들의 몸을 돌려줘라” “임신중단은 의료다” “내 자궁에서 정부를 제거하라”는 등의 구호가 적힌 푯말을 들었다.

같은 시각 링컨 메모리얼 앞에서는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대법원 결정 1주년을 환영하는 ‘전국 생명의날 기념대회’를 열었다. 공화당 대선주자 펜스 전 부통령은 집회에 참석해 “여러분 덕분에 로 대 웨이드가 역사의 잿더미로 돌아갔고 미국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얻게 됐다”며 “미국의 모든 주에서 생명의 신성함이 회복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임신중단권 찬성 집회에 참석해 “그들이 어떻게 감히 기초의료, 우리의 기본권과 자유를 공격하는가”라고 외쳤다. 그는 “우리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다수의 미국인이 우리와 함께한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연설하자 청중은 “4년 더”라고 환호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이 임신중단 권리에 대해 반세기 동안 인정된 판례를 뒤집고 각 주에 결정권한이 있다고 판결한 이후 주별로 임신중단 제한 조치가 잇따랐다. 14개 주에선 사실상 전면 임신중단 금지 법률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소송 중인 경우를 포함해 임신중단 금지 또는 제한 법률이 제정된 곳은 미국 전체의 절반인 25개주에 이른다. 텍사스주, 플로리다주 등은 임신 여부 확인 시기를 갓 지났거나 확인하기 전인 임신 6주 이후의 임신중단을 금지하고, 임신중단 의료 제공자를 처벌하는 조항도 마련했다.

이로 인해 미국 가임기 여성(15~44세) 약 2500만명이 1년 전보다 임신중단이 금지·제한된 환경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합법적인 임신중단 의료 행위도 1년 전에 비해 약 6% 감소했다. 한편 워싱턴과 17개 주에서는 임신중단을 보호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임신중단을 제공하던 진료소가 지역마다 문을 닫거나 새로 열고, 임신중절약과 유산 이후 돌봄, 피임 등 여성의 재생산권 전반으로까지 논쟁이 확산되는 등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1973년 이래 유지되어온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한 연방대법원에 대한 미국민의 신뢰는 역대 최저 수준을 맴돌고 있다. 대법원 결정에 대한 반발로 임신중단 합법화 찬성 여론이 높아지는 추세도 관찰된다.

지난 4월 말 발표된 퓨리서치 조사에서 임신중단을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62%로 2007년 이래 최고치로 나타났다. 갤럽 조사에서도 자신을 ‘프로초이스’(여성 선택권 중시)라고 밝힌 응답이 52%로, ‘프로라이프’(태아 생명권 중시)라는 응답(44%)보다 높게 나타났다. 대법원 결정 이후 각 주별 제한 조치가 잇따르면서 임신중단 권리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임신중단권 보장 문제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처럼 2024년 대선에서도 상당수 유권자의 선택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에서 임신중단이 주요 쟁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14%에 그쳤다. 또한 후보가 임신중단 문제에 대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경우에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민주당원 41%, 공화당원 23%, 무당층 20%로 나타났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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