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푸틴 절친’…이젠 ‘암살 대상’ 신세
1990년대부터 푸틴과 친분
외식 사업하며 러 정부 밀착
‘푸틴의 요리사’ 별명 얻기도
용병들은 정부군 흡수 가능성
바그너 그룹 창설자 예브게니 프리고진(62)은 24일(현지시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에 따라 모스크바로의 진격을 중단하고 러시아를 떠났다.
바그너 그룹이 장악하고 있던 러시아 남서부 로스토프나도누의 러시아 남부군관구 사령부 앞에서 군용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그의 모습이 이날 밤 AP통신 사진에 포착됐다. 로이터통신은 일부 주민들이 프리고진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프리고진은 벨라루스를 향해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1990년대부터 시작된 프리고진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오랜 인연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프리고진은 구소련 시절인 1961년 상트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푸틴 대통령과 고향이 같다.
그는 1981년 절도와 사기 혐의로 체포돼 9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에서 시작한 핫도그 장사로 빠르게 돈을 모았다. 이후 슈퍼마켓과 카지노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다가 1995년 고급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들었다. 푸틴 대통령은 1991~199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대외관계위원회 위원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을 지냈다. 프리고진과 푸틴의 인연은 이 시기에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푸틴 대통령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러시아 정부 및 군과의 케이터링 사업 계약을 잇따라 따낸 프리고진은 구소련 몰락 후 권력과 밀착해 막대한 부를 쌓은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 대열에 합류했다.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가 체첸전쟁 지휘관 출신인 드미트리 우트킨(53)과 공동 설립한 바그너 그룹은 중동, 아프리카,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벌어진 각종 분쟁에 개입해 잔혹성으로 악명을 떨쳤다.
프리고진은 오랫동안 바그너 그룹과의 관계를 부인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정규군이 고전하는 동안 바그너 그룹이 전과를 올리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프리고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을 겨냥해 군 지휘부의 무능을 맹비난했다. 올해 들어선 국방부가 탄약을 지급하지 않는다면서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철수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에 쇼이구 장관은 지난 10일 모든 비정규군은 국방부와 계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프리고진은 이를 거부했으나 지난 14일 그동안 중립을 지켰던 푸틴 대통령이 “국방부 정책을 지지한다”며 쇼이구의 손을 들어주면서 프리고진이 권력 다툼에서 패배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군사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최근 몇주 사이에 프리고진에 대한 러시아 지배층의 반응이 악화됐다”면서 “(프리고진은 이대로 가다가는) 바그너 그룹이 해체될 수 있다고 예상하고 행동에 나섰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반란에 참가하지 않은 바그너 용병들은 국방부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반란에 실패한 프리고진이 러시아를 떠나고 바그너 용병들이 국방부에 흡수되면서 바그너 그룹은 해체될 것으로 보인다고 BBC는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반역자’로 규정한 프리고진의 운명도 불확실하다. 러시아 전문가 질 도허티는 CNN에 “푸틴은 반역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면서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암살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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