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새 뚫린 ‘푸틴 통제력’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 용병
모스크바 200㎞ 앞까지 진격
하루 만에 ‘회군’ 반란 끝났지만
러군 속수무책…리더십 ‘치명타’
우크라는 러 내부 혼란 ‘기회’로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일으킨 반란은 하루 만인 24일(현지시간) 실패로 끝났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 대통령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던 프리고진의 바그너 용병들이 수도 모스크바에서 200㎞ 이내까지 진격한 이번 사태는 푸틴 대통령의 23년 집권 기간 중 최대 위기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육로를 통해 진격한 무장 병력이 모스크바를 위협한 것은 1941년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 이후 처음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원수로 승진하기 위해 필요했을 뿐 우크라이나를 무장해제하고 비나치화하는 데 전쟁은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도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무장해제’와 ‘비나치화’는 지난해 2월24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밝힌 개전의 핵심 명분들인데, 러시아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자신의 최측근의 입을 통해 이를 부정당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CNN은 “푸틴이 그동안 유지해 온 독재 체제의 궁극적 장점인 완전한 통제력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푸틴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러시아가 유리해진다는 계산을 하고 있겠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푸틴 정권의 분열과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태는 푸틴 대통령 특유의 통치 스타일이 빚어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최근 몇달 동안 프리고진이 쇼이구 장관을 맹비난하며 ‘적전 분열’ 양상을 보였으나 푸틴 대통령은 그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NYT는 “이처럼 침묵을 통해 정치적 모호성을 조장하는 것은 푸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통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푸틴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군의 인기가 올라가고, 그럴수록 군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푸틴 대통령이 군 지휘관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을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센터 선임 연구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NYT에 푸틴이 프리고진을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푸틴, 아무것도 통제 못 해”…푸틴 “특별군사작전에 최우선”
러시아의 침공으로 1년4개월 동안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내부 혼란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보총국 대변인 안드리 체르냐크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이 기회를 정치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동부 바흐무트 인근에서 동시다발적 공세를 시작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세계는 러시아의 보스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서방에 F-16 전투기와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를 신속히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CNN은 다수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최대 위기를 모면했으나 허약해 보인다”면서 “모스크바 내에 푸틴의 입지를 약화시킬 기회를 노리는 회의론자나 라이벌이 있다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전문가 질 도허티는 CNN에 프리고진이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날 때 군중들이 박수를 쳤다면서 “러시아인들이 왜 쿠데타를 시도한 사람들에게 환호했겠나”라면서 “푸틴에게는 안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포린폴리시는 “지금 목격하는 것이 푸틴의 종말의 시작인지, 중간인지, 결말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지배의 마지막 챕터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영 로시야 TV와 인터뷰에서 “국방부 관리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다”며 “‘특별군사작전’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며 “이는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이라고 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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