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아동 살릴 방안이라지만… ‘보호출산제’ 두고 반대 목소리도

김향미 기자 2023. 6. 2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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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아동 학대 대응과 관련해 임시 신생아 번호 관리아동 실태조사 방안 등을 발표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정부와 국민의힘이 영유아 살해나 아동 유기 등의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도입을 추진 중인 가운데 보호출산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위기 산모와 아동을 보호한다는 취지이지만, 아동의 친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반대 목소리도 크기 때문이다. 미혼모단체들과 전문가들은 보호출산제보다는 미혼부모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노력과 함께 임신·출산·양육을 위한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생통보제는 부모에게만 있던 출생신고 의무를 의료기관에도 부과하는 것이다.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면 임신과 출산 사실을 노출하기 꺼려하는 산모들을 음지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에 정부는 보완적으로 보호출산제를 병행해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제적·사회적 위기에 처한 임신부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출산하고, 지방자치단체에 아이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이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는 산모가 신원을 완전히 비밀로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 출산할 수 있지만 ‘혈통증서’를 국가기관이 보관한다. 자녀가 16세가 되면 열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는데 친모가 반대하면 소송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부모 인적사항 기록·보관 여부, 자녀의 정보 열람권 범위·시기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호출산제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22개 아동단체·한부모단체·인권단체들로 구성된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지난 23일 성명을 내고 “엄마의 정보를 숨기는 것이 아동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희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위원회 변호사는 25일 기자와 통화에서 “자신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났는지 등 출생기록에 담긴 정체성은 삶의 중요한 기반인데 (보호출산제는) 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임신 기간, 출산 직후에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지 불안해 하고,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상담과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익명으로 유기하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통화에서 “연구 사례를 보면 자기 뿌리에 대한 정보가 없는 아동들은 보육시설에서나 사회에 진출해서나 심리적으로나, 사회활동에서나 위기를 더 겪는다”면서 보호출산제 도입은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노 교수는 “독일과 프랑스 예를 많이 들지만 두 국가는 미혼부모에 대한 편견이 적어 혼외 출산율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명 출산이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라면서 “한국은 미혼부모가 당당하게 자녀를 양육할 사회적 풍토, 정부의 미혼부모 지원 체계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정부가 출생신고가 안 된 (임시신생아번호를 받은) 2200여명을 전수조사한다고 하는데 우선 그 사례를 조사하고 분석한 다음 답을 찾아야 한다”며 “모두 ‘위기 미혼모’ 사례는 아닐 것이다. 또 영아 살해나 불법 인터넷 입양거래 등은 보호출산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아동인권단체들이 2021년 5월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보호출산특별법 즉각 철회하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는 앞서 2020년 11월 ‘미혼모 등 한부모가족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도 보호출산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미혼모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는 데 대해 미혼모단체는 반대하고 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통화에서 “보호출산제가 미혼모를 위한 제도라고 하지만 미혼모들이 겪는 내면의 어려움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미혼모들을 숨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미혼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곤란 때문에 양육보다는 입양을 생각하다가, 결국에 양육을 선택한 사례들이 대다수”라며 “미혼모들이 아이 양육을 선택하게끔, 양육을 이어가게끔 지원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보육시설 아동이나 입양된 아동을 지원하는 것처럼 미혼모들의 아동들도 지원하고, 또 기존의 양육 지원제도를 (위기 임신부가) 임신·출산 전후에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 여야 “영아 살해 재발방지”···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 등 입법 속도낼 듯
     https://www.khan.co.kr/politics/assembly/article/202306231033011


☞ 익명출산제는 '미명이'들을 위한 선택일까[플랫]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1061422001/?utm_source=twitter&utm_medium=social_share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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