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칫거리 취급, 이젠 못 버텨”…69년 만에 문 닫는 연탄공장[현장에서]

고귀한 기자 2023. 6. 2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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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마지막 남은 남선연탄…7월 초 폐업 결정
사용 가구 감소로 한때 하루 40만장→1만장 감소
다른 지역서 공급해야…운송비 등 가격 상승 우려
지난 23일 오전 광주 남구 송하동 남선연탄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배송을 위해 연탄을 쌓고 있다. 고귀한 기자

“세상이 이제는 필요 없다고 그만하라는데 버틸 재간이 있나요.”

광주광역시 남구 송하동 남선연탄에서 만난 임원 A씨는 “막상 폐업하려고 하니 시원섭섭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광주·전남지역에 마지막 남아있던 연탄공장인 ‘남선연탄’이 문을 닫는다. 1954년 문을 연 이후 69년 만이다.

남선연탄은 다음달 초까지만 문을 연다. 애초 지난 16일까지 공장을 가동하기로 했지만 폐업 소식이 알려지면서 재고를 쌓아 놓으려는 주문이 잇따르자 폐업날짜를 조금 늦췄다. 남아있는 석탄 원료를 소진할 때까지만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23일 찾은 연탄공장은 지난 세월을 증명하듯 낡고 허름했다. 공장 천장을 감싼 천막은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따가운 햇볕이 그대로 내리쬐고 있었다. 기계 등 설비는 곳곳이 녹이 슬어있었다.

연탄을 찍어내는 기계는 총 4개 라인 중 1개만 정상 가동을 하고 있었다. 끼익 소리를 내며 연탄이 줄지어 나오면 노동자들은 연탄을 소중히 집어 들어 어깨 뒤쪽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노동자들은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선풍기 1대에 의지해 더위를 이겨냈다. 얼굴과 몸은 까만 연탄재와 땀으로 뒤범벅됐지만, 연탄이 부서질까봐 잠시도 라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23일 오전 광주 남구 송하동 남선연탄 공장에서 노동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귀한 기자

한 노동자는 “수십 년간 매일 그렇게 고되고 힘든 일이었는데 요즘은 하루하루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책임감과 함께 힘이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이 공장에는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30년 이상 일해온 장기근속자다.

남선연탄은 1970~1980년대 석탄 산업의 호황기와 함께했다. 연탄 생산량은 연간 최대 1억 6000만장, 하루 평균 40만장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가정용 연료가 연탄에서 기름과 전기 등으로 바뀌면서 생산·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대에 들어선 연탄 연간 생산량이 2000만장으로 줄었고 지난해는 400만장으로 대폭 감소하면서 경영난에 시달려왔다.

매출 하락과 함께 끊임없는 민원도 폐업을 결정하게 된 원인이 됐다. 사업 초기만 해도 이 공장 부지 주변은 사람이 살지 않은 변두리였다. 한때 다른 연탄공장도 3개나 있었다.

지금은 다른 연탄 공장들이 모두 폐업한 데다 4~5년 전부터는 주변이 개발되면서 ‘분진이 날린다’는 항의 민원이 잇따랐다. 공무원들도 수시로 방문해 사진을 찍고 ‘물을 자주 뿌리라’고 엄포를 놓곤 한다.

지난 23일 오후 광주 남구 송하동 남선연탄 공장에서 노동자가 연탄을 운반하고 있다. 고귀한 기자

회사 측은 다른 곳으로의 이전도 고민했다. 나주와 장성·화순 등 다른 부지를 찾기 위해 애를 썼지만, 허가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기준 전국에 가동 중인 연탄공장은 남선연탄을 포함해 25곳이다.

남선연탄 폐업으로 당장 지역 내 연탄값 상승이 우려된다. 전남 화순에 연탄공장 1곳이 있지만 현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앞으로는 그나마 가까운 전북에서 연탄을 공급받아야 한다.

연탄을 가정에 공급하는 사업자 B씨는 “다른 지역 공장에서 연탄을 가져와 각 가정에 공급하려면 운송비를 포함해 (1장당) 200원 정도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재 연탄은 장당 800원쯤에 거래되고 있다.

연탄은 고깃집에서 사용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취약계층에서 사용한다. 광주·전남에는 4000여가구가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시대 흐름에 따라 일각에선 연탄을 골칫거리 취급하지만 아직도 누군가에겐 힘든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따뜻한 온기”라면서 “다가오는 겨울, 추위에 떠는 이들이 없도록 행정에서 잘 보살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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