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피벗 투 중동’이 우리를 덮쳐 온다[윤홍우의 워싱턴24시]
바이든 親 사우디 행보, 엑스포 유치 변수
이스라엘-美 AI 밀착에 긴장하는 韓기업
중동 외교 전략 치밀한지 되돌아봐야
“테러리스트들에게 자금을 보내지 말아라!”
이달 초 미국 워싱턴DC 주미 한국대사관 앞에서는 다소 소란스러운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를 주최한 단체는 이란민주연합(National Union for Democracy in Iran)이다. 이란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이란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곳이다. 그들은 현 이란 정권을 위해 한국 정부가 이란 동결 자금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는 미국이 이란과 비공식 핵 협상을 재개했으며 핵 프로그램 동결의 조건으로 한국 등에 묶여 있는 원유 수출 자금을 해제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동결된 이란 자금 70억 달러(약 9조 1800억 원)가 미국과 이란 협상에서 또 다시 핵심 쟁점으로 등장한 것이다. 미국의 대(對)이란 정책은 이처럼 우리와 질긴 인연을 맺어왔다.
급변하는 미국의 중동 정책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급속히 친(親)사우디 노선으로 돌아선 가운데 공교롭게도 한국의 제2도시 부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가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 직접 프레젠테이션(PT) 연사로 나서 지지를 호소했으며 사우디 측에서는 ‘미스터 에브리싱’이라고 불리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행사장에 나타나 고공 외교전을 펼쳤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의 ‘사우디 끌어안기’가 이번 엑스포 유치전에 변수가 될 것인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 중동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은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수교에 공을 들이는 중이고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 과정에서 외교적 치적이 될 수 있다. 당분간 사우디에 기울 수밖에 없는 미국을 우려해야 할 상황인 셈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6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사우디 방문 첫날, 앙숙이던 미국프로골프(PGA)와 사우디의 리브(LIV) 골프가 전격적인 합병을 선언한 것도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미 관계 역시 현 정부 들어 부쩍 끈끈해지기는 했으나 ‘페트로 달러’로 묶인 미국과 사우디와의 관계는 현 국제 질서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근간이다.
미국이 중동의 최대 우방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통해 인공지능(AI) 시대 패권을 쥐려 하는 것도 우리 반도체 기업들 입장에서 민감하게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AI 생태계가 가장 잘 구축돼 있으며 특히 스타트업의 성지로 불린다. 맥도널드·월마트·세일스포스 등 미국 유통 공룡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AI 스타트업을 인수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는 등 미국과 이스라엘 기업 간의 밀착은 끈끈하다. 최근에도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인텔이 250억 달러를 들여 이스라엘에 공장을 추가로 짓기로 했으며 AI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는 엔비디아가 이스라엘 스타트업들과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AI 시대의 표준을 만들고 주도권을 확보해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요동치는 중동의 정세는 한국의 대외 정책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미중 간의 중동 패권 경쟁과 중동 국가들의 독자적인 외교 노선이 우리에게 위기와 동시에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장 사우디는 미국에 우라늄 농축 허용을 요구하면서 미국의 우방인 한국과 미국이 타도하는 중국 사이에서 원자력발전소를 맡길 나라를 저울질하고 있다.
백악관의 동향과 국제 정세에 민감한 일본은 이미 기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교도통신은 앞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다음 달 중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중동 국가를 순방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중동의 외교 전쟁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과 중동을 아우르는 치밀한 외교 전략이 우리에게 갖춰져 있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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