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유예도 가능한데… ‘냉장고 영아 시신 유기’에 ‘영아살해죄’ 적용 논란

‘영아살해’ 10년 이하 징역형 규정… 실제로는 집행유예도
‘살인’ 최소 5년·‘아동학대치사’ 최소 7년 이상 징역… 형평성 문제 제기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연합뉴스

경기 수원시에서 발생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피의자인 30대 친모가 ‘영아살해’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2년간 두 명의 아기를 살해한 그에게 살인 혐의 대신 형 감경 사유가 있는 영아살해죄를 적용한 것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같은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학대살해죄는 살인보다 중하게 처벌받지만, 영아살해죄는 다양한 참작 사유로 인해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25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이 사건 피의자 A 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아이를 출산하고 곧바로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시 소재의 한 아파트 세대 내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온 혐의를 받는다. 이미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A 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임신하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2018년 11월에 넷째 자녀이자 첫 번째 피해자인 딸을 병원에서 출산한 후 집으로 데려와 목 졸라 살해하고, 이후 2019년 11월 다섯째 자녀이자 두 번째 피해자인 아들을 병원에서 낳은 뒤 해당 병원 근처에서 마찬가지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 씨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자백을 받아 영아살해 혐의로 지난 21일 긴급체포하고 23일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A 씨가 출산 후 만 하루 사이에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 상태에서 아이를 살해한 점을 고려해 영아살해죄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형법에서 ‘영아살해’의 경우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혹은 양육할 수 없다고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해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10년에 가까운 징역형이 선고된 판례는 찾기 힘들다. 2017년 아이 시신 2구를 냉장고에 보관했던 부산 영아살해 사건 피의자의 경우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전주지법은 전북 전주시 자택에서 자신이 출산한 아이를 화장실 변기 물에 약 30분간 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에 비해, ‘살인’에 대해서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영아살해와 똑같이 아이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행인 ‘아동학대치사죄’는 최저형이 징역 7년이다. 형 감경 요소가 있는 영아살해죄를 이번 사건에 적용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당시 만들어져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영아살해죄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범죄 등으로 인한 원치 않은 임신, 장애 및 전염성 질환이 확인된 경우 등 합법적으로 낙태 시술이 가능해졌고, 출산 후 가정위탁이나 공개 입양 등 활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도 있어 경제적인 이유가 불가피하게 아이를 살해했다는 감경 요소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쟁이 막 끝난 과거 시대엔 치안도 불안하고 원치 않은 임신도 지금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많아 영아살해에 대한 감경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이런 법이 현재까지 우리 법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에 대한 생명 존중에 대한 지금의 사고방식과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