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노량진 공시생…공무원은 사표 쓰고 "창업 도전"
[편집자주] 한 때 공직 생활을 하는 것이 큰 영예였다. 공무원은 벼슬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공무원 하겠다는 학생들이 없다. 현직자들도 민간 이직을 꿈꾼다. 최근까지 여전히 살아있던 '관존민비'라는 전근대 가치관이 이제야 붕괴되는 것이다. 갑작스런 변화에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공공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마주한 현시대를 기록한다.
지난 13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위치한 한 공무원 준비 학원. 내년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학원에서는 1시간쯤 합격전략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학생은 총 7명.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열린 오프라인 설명회였지만 빈자리가 훨씬 많았다. 과거 공무원 설명회를 듣기 위해 강의실 좌석이 빽빽하게 찼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학원에서는 역대 최저 경쟁률을 기록한 지금이야말로 공무원 시험을 볼 적기라고 홍보했다. 학원 관계자는 "지금 노량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공무원 학원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다"며 "공무원을 조금 뽑기도 하고 코로나 이후 사기업들이 채용을 늘린 탓이다. 앞으로는 초시생보다 재시생들이 학원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직업 선호도 1위, 배우자 직업 선호도 1위를 기록했던 공무원 인기가 점점 시들고 있다. 공무원 경쟁률은 점점 떨어지는 반면 공직 생활을 하다 사기업으로 이직하는 '의원 면직' 비율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5일 국민의힘 소속 옥재은 서울시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2013년 84대 1에서 지난해에 22대 1까지 떨어졌다. 임용 5년 차 이하인 서울시 공무원의 의원면직률은 2019년 4.7%였지만 지난해에는 8.6%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공무원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건 대학가에서도 쉽게 감지된다. 지난달 서울 한 대학에서 진행한 '서울시 공무원 준비 및 공무원 역할' 설명회에는 30명 정원 중 7명만 참여했다. 지난해 실시한 '5급 공채 고시 설명회'에는 200명 정원 중 9명만 신청했다. 비슷한 시기 열린 대기업 채용 설명회에는 100여명이 몰렸다.
이상적인 배우자 직업으로 공무원이 1위를 하던 시절도 지나갔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이상적 배우자 직업'을 조사한 결과 1위는 남녀 모두 '일반 사무직'이었다. 18년 동안 부동의 1위를 기록했던 '공무원·공사'는 2위로 떨어졌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도 '애인이 9급 공무원인데 결혼해도 괜찮을까' '결혼 포기한다는 전제 하에 공무원 해도 될까' 등의 글이 올라온다.
공직 선호도가 낮아진 것은 업무환경과 보수 면에서 민간보다 열악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머니투데이는 최근 취업준비생, 현직 공무원, 면직 공무원 등 20~30대 청년들 20여명을 대상으로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들이 한 답변 중 공통적으로 언급된 키워드로는 '월급 적어' '사회적 인정 부족' '연금 의미없어' '업무강도 세' 등이 있었다.
서울시청에서 9급 공무원으로 3년 넘게 근무하다가 지난해 면직하고 현재 창업을 했다는 김모씨(28)는 "당시에는 기본급이 139만원이었다"며 "여기에 식대, 야근수당, 대민수당까지 모두 포함하면 실수령액이 170만원 정도 됐다. 당장 먹고 사는 게 부족해서 저축은 꿈도 못꿨다"고 말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은 177만800원이다.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2020년 90.5%에서 2021년 87.6%, 2022년 82.3%로 줄어들고 있다.
김씨는 안정적인 직장을 꿈꾸며 공무원이 됐지만 현실은 오히려 더 불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 생활을 할 때 공황장애를 앓았다"며 "민원인에게 욕을 먹는 건 기본이고 하루는 민원인이 흉기를 들고 찾아온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다는 게 힘들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는데 너무 불쌍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열심히 해도 항상 그 자리라는 생각이 있었다"며 "직장인이라면 내가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냈을 때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사명감을 느낄 만큼 정신적으로 금전적으로 보상이 없으니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검사를 그만두고 한 법무법인으로 이직한 P씨는 "수당 제외하고 기본급으로 따지면 월 340만원 정도 받았다"며 "대형 로펌과 비교할 때 반토막도 안되는 월급이었다. 사명감을 갖고 검사를 시작했지만 '개검' '떡검' '공무원은 공노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나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욕을 먹어야 하지'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P씨는 또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근무를 했다"며 "겨울에는 공공기관 에너지 정책 때문에 난방도 해주지 않아 매일 패딩을 입고 감기 걸리면서 일을 하는 게 서러웠다. 돈은 돈대로 안모이고 개인 워라밸에 건강까지 챙길 수 없으니 이제는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주변 사무관들을 봐도 '왜 그 때 행시쳤지' 한탄을 많이 한다"며 "이젠 연금 메리트도 젊은 공무원들에겐 의미가 없다. 나중에 퇴직해도 월 100~200만원 정도 받을텐데 차라리 지금 많이 벌어서 저축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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