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이화수 대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경기 내용 선보이길
(MHN스포츠 김현희 기자) 매년 6월 25일만 다가오면, 필자는 참 먹먹해진다.
시즌의 시작과 끝을 맞이할 때에도 가슴 한 편에서 안타까움이 밀려 올 때도 있지만, 6월 25일이라는 날짜는 참 슬픈 날이다. 대외적으로는 6.25 전쟁이 발발한 날이기에 그 아픈 상처를 잊지 말자는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키움 히어로즈에서 완벽한 조연배우 역할을 했던 이가 세상을 떠난 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 좋은 미소로 모든 이들을 기분 좋게 했던 이화수 대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리'에서 멈춰진 그의 직급이 더욱 안타까워 보이는 날이기도 하다.
매년 기일마다 떠오르는 그 이름,
키움 히어로즈 홍보팀, 故 이화수 대리
13년 전 오늘, 밤 9시가 넘어간 시점이었다. 경기가 한창이었던 목동야구장에 비보가 전해졌다. 홍보팀 이화수 대리가 영면했다는 소식. 보도자료를 받아 본 이들 모두 한동안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목동구장 기자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뛰어와 "어서옵시옵소서!"라는 특유의 인사말로 모두를 기분 좋게 해 주던 이의 영면 소식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알고, 구단이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늘 긍정적인 미소를 보였던 그였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2009년은 히어로즈 구단이 메인 스폰서 없이 운영됐던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담당 기자들도 그러한 안타까움을 같이 공감하면서 소통을 계속했는데, 유독 이화수 대리만큼은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았던 이였다. "무조건 메인스폰서 나타납니다. 기다려 보십시오!"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냈던 그를 보고 있으면, '아! 구단에 이렇게 진심인 이가 있으니, 히어로즈가 다시 현대 왕국의 위용을 찾을 날이 멀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또 그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가 생각나는 사자성어가 바로 '선공후사(先公後私)'였다. 그만큼 팀을 사랑하고, 팀을 먼저 생각하는 이가 이화수 대리였다. 본인이 절대 나서는 일 없이 늘 선수, 구단이 한국 프로야구의 얼굴이 되기만을 누구보다도 바랐단 이였다. 누구도 선뜻 맡기 힘든 '조연배우'라는 역할을 스스로 맡았던 그야말로 진정한 프로였다. 일례로 경기 중반, 히어로즈의 4번 타자로 꾸준한 활약을 펼쳤던 '클리프 브룸바'가 심판 판정에 분을 삭히지 못한 채 씩씩대자 이화수 대리가 냉큼 더그아웃으로 향하여 그를 달래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선수들도 이 대리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좋아했다. 이 대리의 영면 소식에 선수단 스스로 근조 리본을 달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군 전역 후 막 기자 생활에 입문했던 필자에게 이화수 대리는 말 그대로 '베테랑 프런트 직원'이었다. 이 대리는 그랬던 필자에게 누구보다 진실하게 다가왔다. 한 번은 이 대리와 그라운드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메인스폰서와 관련된 주제였다. 이에 이 대리는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우리 대표이사님 정말 대단하시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절대 운영비가 펑크 나는 일이 없다. 나중에 메인 스폰서 계약 소식 들려올 때 대표님께서 보내 오신 문자 보여드리겠다. 그거 보고 기사 쓰시면 정말 흥미로우실 것이다."라며 구단을 사랑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서 시즌 후 메인스폰서 계약 소식이 들려 왔을 때 병상에서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그거 보세요 기자님! 계약 한다고 했죠? 그라운드에서 꼭 만나요!"라는 약속을 했다. 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먼저 갔는지 재차 안타까워지는 오늘이다.
또한 그는 무슨 일이 있건 간에 목동구장을 찾으면 누구라도 결코 빈 손으로 돌려보내지 읺았다. 특히, 필자는 히어로즈 외에도 목동에서 열리는 모든 고교야구 대회를 취재중이었던 상황이었는데 그것을 또 어찌 알고 필자를 불러내 고생한다며 음료를 건네는 세삼함까지 선보였다. 그래서 '이화수 대리를 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이만큼 다른 사람들을 늘 먼저 챙기는 이화수 대리였지만, 정작 본인과 관련한 일에는 절대 앞으로 나서는 일이 없었다. 특히, 2009년 시즌을 마치고 결혼 소식을 알려왔는데, 필자가 "가장 먼저 보도자료 처리를 해 주겠다."라고 나서자 손사레부터 쳤다. 이미 홍보팀장(당시 김기영 팀장)에게 절대 본인의 결혼 소식을 보도자료로 내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단다. 하지만, 그의 심성을 잘 알고 있던 김기영 팀장은 어김 없이 담당 기자들에게 이화수 대리의 결혼 소식과 사진 두 장을 보도자료로 냈다. 이에 필자를 비롯하여 모든 담당 기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일제히 기사를 낸 바 있다.
그런데 부창부수라 했을까. 이화수 대리의 영원한 피앙새인 전은경 씨도 정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 별 것 아닐 수 있는 친절에도 고개부터 먼저 숙이고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보내는 이였다. 그래서 이 대리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을 때 속마음과는 달리 "아! 이 나쁜 사람아! 이렇게 착한 아내를 두고 어찌 먼저 갔는가!"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벌써 그가 떠난지 13년이 됐다. 아마 살아 있었다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모습도, 두 번이나 스폰서를 갈아 탄 모습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대리'보다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여 팀장 역할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기에 이렇게 성장한 지금의 히어로즈를 '살아 있을 때' 못 보고 갔다는 점이 상당히 아쉬워진다. 하지만, 필자가 아는 이화수 대리라면, 하늘나라에서 현재 히어로즈의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의 기일을 떠올리며, 적어도 25일 경기에서만큼은 승패를 떠나 키움 선수단이 하늘로 떠난 이화수 대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경기 내용을 선보이기를 기원해 본다. 하늘에서 마음껏 야구를 보고 있을 이화수 대리의 영원한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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