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발라드의 위기…리메이크곡만 남고 차트서 신곡 실종

이태수 2023. 6.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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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트로트 팬덤에 밀려…'연애보단 나 중시' 가치관 변화도 영향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한 때 우리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발라드 장르가 걸그룹을 중심으로 한 K팝 아이돌 노래와 트로트에 밀려 위기를 맞았다.

발라드 신곡이 차트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사이 기존 발라드 가수들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거나 '검증된' 옛 히트곡을 리메이크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가수 박재정 [연합뉴스 자료 사진]

차트서 힘 못 쓰는 발라드들

25일 가요계에 따르면 올해 5월 써클차트 월간 디지털 차트 상위 20위 가운데 발라드 장르는 허각의 '물론'(14위), 박재정의 '헤어지자 말해요'(16위), 임재현의 '헤븐'(Heaven·20위) 세 곡뿐이었다.

이 가운데 신곡은 '헤어지자 말해요' 단 한 곡이고 나머지 두 곡은 리메이크곡이다.

2013년 5월 같은 차트에서는 바이브의 '꼭 한번 만나고 싶다'(4위)·'이 나이 먹도록'(18위), 포맨의 '청혼하는 거예요'(7위), 수지의 '나를 잊지 말아요'(14위), 린의 '유리 심장'(19위)·'오늘 밤'(20위) 여섯 곡이 상위 20위에 포진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차트 상위권에 자리한 발라드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신곡 기준으로는 사실상 '전멸'한 셈이다.

발라드가 사라진 자리는 대신 아이브의 '아이 엠'(I AM·1위)·키치(Kitsch·3위), 르세라핌의 '언포기븐'(UNFORGIVEN·2위), 에스파의 '스파이시'(Spicy·4위), 블랙핑크 지수의 '꽃'(5위) 같은 걸그룹 노래가 채웠다.

가수 허각 [빅플래닛메이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팬덤 스트리밍·1020 가치관 변화 영향

가요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실물 음반 외에 음원 스트리밍도 '팬덤' 위주로 재편되면서 걸그룹과 트로트 가수 사이에서 발라드 가수가 설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일반 대중은 유튜브와 스포티파이 같은 해외 플랫폼으로 많이 빠졌고, 국내 플랫폼은 팬덤 위주가 됐다"며 "팬덤이 부족한 기성 발라더나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가수들은 진입조차 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발라드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는 1990∼2000년대에 비해 대중음악의 주 소비층인 10∼30대의 정서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랑의 대상인 '너'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뜨거운 사랑을 하고, 조성모의 '투 헤븐'(To Heaven)처럼 때로는 사후에서까지 만남을 기약하는 발라드의 정서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해 큰 사랑을 받은 아이브, 르세라핌, (여자)아이들 같은 걸그룹들은 하나 같이 '사랑하는 너'보다는 '당당한 나'에 초점을 맞춘 메시지를 앞세웠다.

한 유명 발라드 가수의 소속사 대표는 "과거와 비교해 연애 자체에 관심이 적어진 10∼30대의 세태가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고, 한 가수 겸 작곡가는 "시대적·문화적 환경이 변했다. 과거와 비교해 감성이 메말랐다"고 토로했다.

'너를 만나' 등 발라드 히트곡을 다수 보유한 폴킴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라드의 위기에 대해 "솔직히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인 것 같다"며 "'발라드는 경기가 좋을 때 더 잘 팔린다'고 표현하기도 하더라. 사람들이 힘든 시기에 (무거운 주제의) 발라드를 듣고 굳이 더 힘들어지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댄스곡으로 변신한 가수 김재환 [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검증된 히트곡 리메이크만…장르 전환도 모색

가요계에서는 성공이 검증된 기존 발라드 히트곡을 리메이크해 시장에 내놓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멜론 '톱 100' 차트에 진입한 허각의 '물론'(원곡 KCM), 임재현의 '헤븐'(원곡 김현성), DK의 '심'(원곡 얀), V.O.S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원곡 다비치),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원곡 이문세), 지아의 '사랑…그게 뭔데'(원곡 양파), 테이의 '모노로그'(원곡 버즈) 등 발라드는 하나같이 모두 리메이크곡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리메이크곡을 하나 내는 비용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원곡자 사례비, 편곡비, 가창비 등을 모두 합쳐 3천만원 이하"라며 "이미 시장에서 인정받은 명곡을 다시 내놓는 것이기 때문에 노래가 통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리메이크곡을 여러 개 발표하면 하나는 뜰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일부 발라드 가수들은 아예 다른 장르로 바꾸는 모험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룹 워너원 출신 김재환은 그간 '안녕하세요', '다 잊은 줄 알았어' 같은 발라드곡으로 주로 활동했지만, 이달 발표한 여섯 번째 미니음반에서는 강렬한 댄스곡 '개이득'으로 파격 변신을 꾀했다.

그는 최근 쇼케이스에서 "솔로 가수로서 새롭게 데뷔하는 기분이다. 그동안의 김재환은 기억도 안 날 정도"라고 소감을 말했다.

또 다른 유명 발라드 가수가 속한 소속사 대표는 "올해 컴백할 때는 기존의 발라드가 아닌 포크 혹은 록 장르를 시도해보려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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