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중난도 문항 늘어나면 '고른 등급 분포'가 관건"
출제위원장·평가원장 지낸 전문가들 "수능 수명 다해…새로운 시험 필요"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서혜림 기자 =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연일 강조하면서 올해 수능은 중난도 문항이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 최상위권 학생들의 체감 난도는 낮아지겠지만, 다수의 중위권 학생들은 체감 난도가 높아져 오히려 학원을 더 찾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올해 시행 30년을 맞는 수능이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며 '포스트 수능'을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수능 출제위원장과 수능 주관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으로 9월 모의평가와 수능에서 중난도 문항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A교수는 "킬러문항을 배제하면 (국어영역에서) EBS 연계 지문이지만 길이를 늘인다든지 하는 식으로, 생소하지 않지만 전체적인 난도를 끌어올려 중난도 문항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2020년대 수능 출제위원장을 지낸 B교수도 "중간난도 문제가 더 많아지는 게 (킬러문항 배제의)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해야 등급을 좀 받을 수 있다(등급이 고르게 분포된다)"며 "너무 쉽게 출제돼 '등급 블랭크'가 나오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정말 심각한 문제이므로 어떻게 정규분포를 만드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현재 수능은 9등급 상대평가 체제다. 상위 4%가 1등급, 4∼11%는 2등급, 11∼23%는 3등급을 주는 식이다.
하지만 초고난도 문항이 빠져 수험생의 11% 이상이 1등급을 받는다면 차점자는 2등급이 아니라 3등급을 받게 된다.
실제로 2020학년도 수능 사회탐구영역 윤리와 사상, 세계사에서는 1등급이 각 14.88%, 12.23% 쏟아지면서 차점자들이 3등급을 받았다.
중난도 문항을 늘려 변별력을 확보하려 할 경우 소수의 최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는 체감난도가 낮아지겠지만, 다수의 중상위권·중위권 학생들은 오히려 체감난도가 높아질 수도 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수험생들이 '실력'이 아닌 '실수' 싸움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B교수는 "최상위권에서의 변별력이 사라지면 누가 손해를 보겠느냐"며 "중위권 애들이 힘들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위권 성적의 학생들이 버거움을 느끼면 학원이 (중위권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사교육 풍선효과를 우려하기도 했다.
수능이 5개월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출제 기조가 안정적으로 적용될지 역시 미지수다.
2010년대 출제위원장을 지낸 C교수는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넘어가면서 '시험 기간'이 있었다"며 "몇 년의 연구를 거쳐서 미래 학생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시대변화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충분히 시험해야 새 방식을 만들 수 있는데 지금 몇 개월 안에 이런 걸(초고난도 문항 완전 배제)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A교수는 "목표한 정답률을 얻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내는 사람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푸는 사람은 어렵다고 볼 수 있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응시생 학력 문제도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올해부터 변화를 준다면 수능에서 상당한 위험부담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수능을 이을 새로운 형식의 시험을 만들 때라고 지적했다.
C교수는 "사실 수능이라는 출제방식이 수명이 다 됐다"며 "30년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기 때문에 새로운 출제방식을 고민해서 찾아내야지 이 안에서(수능에서) 뭔가를 찾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수능 출제와 관련해서는 정치권보다 학계와 교육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크다.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D교수는 "(교육과정 내 출제 원칙은) 측정하려는 역량이 교육과정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지문이 교과서에 있어야 한다는 게 아닌데 과학·경제 지문이 어렵다고 교육과정 밖이라고 하는 건 단순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이 수능 출제 기조를 지시하는) 지금의 상황은 기관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시험의 신뢰도와 객관성이 흔들리면 이를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역시 2010년대 출제위원장을 지낸 E교수는 "변별력에 대해 논의할 때 교육부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학회나 교수들의 의견을 들었으면 좋겠다"며 "교수·교사들이 출제에 참여하는데 출제할 때는 이미 교육부에서 방침이 내려와 있기 때문에 그 전에 초기부터 (학계가) 참여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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