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커다란 성기가 달렸는데…헉! 암컷이라고?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3. 6. 2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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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6] 육중한 몸을 자랑하는 동물이었습니다. 윤기 나는 털, 다부진 몸매, 빛나는 눈빛을 겸비한 카리스마도 있었지요. 최고의 자리를 가리기 위해 두 놈이 붙었습니다.

육체미를 과시하듯 격렬히 몸을 부딪칩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첨예한 싸움이었지요. 10여분이 지났을까요.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놈이 갑자기 성기를 발기시키더니 고개를 조아립니다. 항복의 표시였습니다. 큼직한 음경으로 복종 의사를 전달한 것이었지요.

학자 토머스 페넌트가 18세기에 쓴 ‘네발동물의 역사’에 수록된 점박이 하이에나.
우리 인간이 화가 난(?) 성기를 노출하는 일은 매우 도발적인 일이지만, 이들에겐 유화적인 제스처입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때도 자신의 성기를 발기시키곤 하지요.

싸움 뒤, 100여일이 지났을까요. 패배한 녀석의 배가 어찌 된 일인지 볼록합니다. 이내 고통을 호소하더니, 음경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져 나왔습니다. 새끼를 출산했던 것이지요. 커다란 성기를 가지고 있던 녀석이 사실은 암컷이었던 셈입니다. 점박이 하이에나의 이야기입니다.

점박이 하이에나. <저작권자=flowcomm>
고대 그리스인도 헷갈린 하이에나의 성별
“이 동물은 자웅동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하이에나를 자웅동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찰한 모든 개체가 커다란 성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학자들을 헷갈리게 한 개체가 하이에나였지요.

“저것이 수컷이여 암컷이여?”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하이에나의 성별을 구별할 수 없었다. 사진은 아리스토텔레스 흉상.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가 혼란스러울만 했습니다. 점박이 하이에나 암컷은 수컷과 ‘똑같은’ 크기의 음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려 17cm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가짜 음경’(Pseudo-penis)이라고 부르지요.

크기만 큰 것이 아닙니다. 음순이 합쳐져서 수컷의 음낭과 흡사한 모양의 기관도 있지요. 점박이 하이에나의 가짜 음경은 해면체가 들어 있어서 발기도 가능합니다. 이들은 음경을 통해 소변도 보고, 아이도 낳습니다.

1922년 ‘해부학 연대기’에 묘사된 점박이 하이에나 성기. 왼쪽이 수컷, 오른쪽이 암컷의 생식기다. 구분이 안갈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음을 알 수 있다.
‘가짜음경’으로 인한 난산(難産)
점박이 하이에나 암컷은 어쩌다 커다란 음핵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학자들에게도 이는 의문이었습니다. 가짜 음경이 생물학적으로 별 이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만 커다오 예쁜 내 새끼.” 새끼와 휴식을 취하는 암컷 점박이하이에나. <저작권자=mattberlin23>
특히 새끼를 낳을 때가 그렇습니다. 긴 음핵을 통해 출산하기에 새끼는 길고 좁은 산도를 통과해야 하지요. 저산소증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인 셈입니다. 산모에도, 새끼에도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지요. 암컷 하이에나의 15%가 첫 출산에서 죽습니다. 새끼의 60%도 사망하지요.

출산의 과정이 끝났다고 해피엔딩인 건 아닙니다. 포식자들이 하이에나의 새끼들을 노려서입니다. 암컷 하이에나는 제법 무서운 동물이지만, 출산 후에는 쉽게 힘을 차리기가 힘듭니다. 암컷 하이에나가 동굴을 찾아서 출산하는 배경입니다. 새끼를 지키겠다는 일념은 모든 어미가 품고 있는 숭고한 감정입니다.

생명의 위험을 자주 받는 탓에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과다 분비 되어 ‘가짜 음경’이 생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다만 과학계에서 합의된 내용은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남성 호르몬이 항상 가짜 음경을 만들 정도로 과다하게 분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는 그저 대자연에서 볼 수 있는 다양성의 증거 정도로 해석됩니다.

‘가짜 음경’으로 인사하는 하이에나
돕고산다는 말은 인간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토록 힘든 출산을 거치기에, 점박이 하이에나는 사회성을 발달 시켰지요. 최대 80마리에 달하는 대규모 공동체를 구성합니다. 함께 사냥도 하고, 새끼도 돌보는 우리네 모습과 비슷하지요. 물론 이 공동체는 (힘도 센) 암컷에 의해 주도됩니다. 전형적인 모계사회인 셈입니다.
“오늘 향기 좋은데, 향수 뭐 썼어?” 점박이 하이에나가 생식기에 얼굴을 갖다 대며 인사하고 있다. <저작권자=David W. Siu>
공동체에서 사회적 의사소통의 주요 도구로 ‘가짜 음경’이 사용되지요. 조직 내 순위를 정할 때에도, 반갑다는 의사표시를 할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열이 낮은 하위 암컷은 서열이 높은 암컷의 음핵을 핥습니다. 수컷 역시 서열이 높은 암컷의 음핵을 핥으며 존경을 표시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암컷은 결코 수컷의 음경을 입에 대지 않지요. 수컷이 철저히 ‘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이에나 세계에선 강제 교미가 없다?
‘가짜 음경’의 장점은 사회적 상호작용 말고도 존재합니다. 암컷 점박이 하이에나의 커다란 가짜 음경이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어서입니다. 강제적 교미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의미지요. 더군다나 점박이 하이에나의 경우에는 암컷이 수컷보다 힘도 세고 덩치도 크기 때문에 하기 싫은 교미는 보기 힘든 구조입니다.

암컷 점박이 하이에나는 맘에 드는 수컷에게만 자신의 ‘가짜 음경’을 소매를 말아 올리듯 오므립니다. 자신의 교미 상대로 인정한다는 신호지요. 수컷은 철저히 복종의 자세를 취하다가 암컷의 허락이 떨어져서야 관계를 준비합니다.

“자기야, 오늘 뭐먹을까?” 점박이 하이에나 한 쌍. 암컷이 우위에 있는 대표적 동물이다. <저작권자=Mister E>
점박이 하이에나 암컷만 별종인 것은 아닙니다. 여러 동물의 암컷들이 이처럼 ‘가짜 음경’을 가지고 있어서입니다.

중앙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야행성 영장류인 갈라고원숭이 암컷들도 길게 늘어진 음핵을 가지고 있지요. 거미원숭이 역시 음핵이 발기가 가능한데, 너무 길어서 음경으로 오해받곤 합니다. 양털원숭이 역시 음경보다 긴 음핵으로 유명한 동물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점박이 하이에나처럼 음핵으로 출산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미원숭이 암컷 역시 기다란 음핵을 가진 대표적 동물이다. <저작권자=Petruss>
하이에나가 보여주는 자연의 다양성
하이에나 하면, 시체 청소부나 비열한 동물로 떠올리곤 했습니다.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 ‘라이언킹’의 영향입니다. 글을 준비하면서 편견이 가득한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는 선입관을 암컷 하이에나가 무너뜨려 줬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이토록 찬란한 다양성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도 알고보면 귀여운 아이들이랍니다.” 점박이 하이에나 새끼들. <저작권자=Bernard DUPONT>
<세줄요약>

ㅇ점박이 하이에나 암컷의 음핵은 17cm에 달한다. 수컷 성기처럼 보일 정도다.

ㅇ암컷은 음핵을 통해 출산한다. 산도가 좁아서 생존율이 낮다. 맹수로부터 공격 위험성도 크다.

ㅇ하이에나가 사회성을 발달시킨 이유다. 이들은 여자는 약하다는 편견을 무너뜨린다.

<참고문헌>

ㅇ조안 러프가든, 진화의 무지개, 뿌리와이파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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