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배 꼰' 수능 킬러문항, 시험범위·문항 수 축소 반작용?
"교육과정·수능 체제 개편이 근본 대책"
(세종=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공교육 밖 출제 배제 지시'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2010년대 후반 교육과정·수능 제도가 재차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가 당시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험 범위 축소, 문항 수 감소 등에 나섰지만 한정된 상황에서 변별력을 확보하려다가 부작용으로 킬러 문항 출현이 잦아졌다는 주장이 나온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 2017∼2020학년도 수능에서 자연 계열 수험생이 많이 보는 수학 가형에서는 종전과 비교해 행렬, 수열, 함수의 극한과 연속, 일차변환이 시험 범위에서 제외됐다.
인문계열 수험생이 주로 택하는 수학 나형에서는 집합과 명제 등이 추가됐으나 행렬, 지수함수, 로그함수가 빠졌다.
수학 학습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행렬이 인문·자연 계열 시험 범위에서 빠진 것은 1994학년도 수능 도입 이후 처음이어서 당시에도 주목받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 2021학년도 수능 시험 범위에서도 행렬은 여전히 제외됐다. 여기에 직전 수능 때와 견줘 벡터도 시험 범위에서 사라졌다.
2022학년도부터는 수학에서도 계열 구분 없이 공통과목인 수학Ⅰ, 수학Ⅱ를 치르고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등 3가지 선택과목 중 1개만 골라 시험 볼 수 있게 됐다. 선택과목화 하면서 시험 범위가 더욱 좁아진 것이다.
국어에서는 출제 범위의 큰 변화는 눈에 띄지 않은 가운데 문항 수가 달라졌다.
2007학년도까지 시험 시간 90분에 60문항으로 출제됐던 국어 영역은 2008∼2013학년도 시험 시간이 80분으로 줄고 문항 수도 50문항으로 감소했다.
그러다 2014학년도부터는 시험 시간은 그대로 둔 채 45문항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2018학년도부터 도입된 영어 절대평가 역시 시험 범위를 좁히는 효과를 냈다고 본다.
주요 과목 가운데 영어의 변별력이 거의 없어지면서 사실상 국어, 수학에서만 변별력을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문항 수, 시험 범위가 각각 줄어든 두 과목에서 기존보다 변별력을 더욱 높여야 하다 보니 여러 성취 기준이 복잡하게 얽혀 난도가 상승한 킬러 문항이 탄생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완화하고 과도한 수능 대비에 따른 사교육비 문제를 해소하고자 교육과정 범위를 줄이고 이에 맞춰 수능 범위도 좁혀왔지만, 오히려 반작용만 키웠다는 뜻이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전문위원을 지낸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수능 범위가 축소된 것이 킬러 문항 등장에 영향을 줬다"며 "영어 절대 평가 확대로 줄어든 변별력을 다른 과목에서 확보해야 했던 배경도 있다"고 말했다.
대한수학회 회장을 지낸 이향숙 이화여대 교수는 "2015 교육과정 개편과 그 이후 수능 개편 당시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학 교과과정의 내용도 줄고 난도가 줄었다"며 "그런데 그 뒤 분석해보면 사교육은 줄지 않았고, (수능) 킬러 문항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킬러 문항 논란으로 촉발된 현재 수능의 문제점에 동의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출제 경향을 손보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수능 체제를 개편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 교수는 "지금의 수능은 학생들의 학력을 키워주지 못하는 등 사실상 생명력을 다했다"며 "당장 2028학년도 대입 개편을 통해 수능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 역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것이 수학 학습 과정에서 키워지는 논리적인 사고력"이라며 "깊이 있는 학습보다도 기초 개념 자체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배울 것은 배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이러한 주장에 반론도 제기된다.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은 "대학이 서열화돼 있고, 대학들의 선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출제 당국이 변별력 높은 요소를 출제하다 보니 킬러 문항이 생긴 것"이라며 "(교육과정·문항 수 감소와 킬러 문항을) 직결시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porqu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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