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보하던 출생통보·보호출산제 속도…'유령아동' 비극 막을까
전문가들 "병원 출생통보제·국가 지원 강화"…보호출산제는 분분
(서울=연합뉴스) 김영신 권지현 기자 = 최근 발생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으로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의료기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가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에게만 맡겨져 있던 출생신고 제도를 손봐 보편적 출생통보제로 가야 한다고 대체로 동의했다.
하지만 '병원 밖 출산' 등 사각지대까지 최소화하려면 근본적인 양육 환경이 종합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25일 보건복지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기관이 아동 출생 정보를 직접 등록하는 출생통보제와, 위기 임산부가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을 지방자치단체가 보호하는 보호출산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각 내용을 담은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과 보호출산제 특별법안은 각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보건복지위에 계류 중이다. 같은 내용의 법안들은 이전 국회에서도 여러 번 발의됐으나 우선순위와 찬반 논쟁에 밀려 유야무야 됐다.
정부는 올해 4월 발표한 '윤석열정부 아동정책 추진방안'에서 모든 아동의 누락 없는 출생신고와 공적 보호를 위해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고, 보호출산제 도입도 보완적으로 병행하겠다고 제시했다.
이후 두 달여 만에 이번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국회 모두 뒤늦게나마 논의를 가속하는 모습이다.
의료기관 출생통보제를 둘러싼 쟁점은 크게 ▲ 병원의 행정부담과 책임 부담이 커지고 ▲ 출산 자체를 숨기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병원 밖 출산이나 낙태(인공중절)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와 유관 시민단체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은 의료기관에 출생을 통보하는 의무를 부여해 부모의 신고 누락이나 허위 신고를 방지하고 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행 출생신고제도는 부모가 하지 않으면 아동 출생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보편적인 출생통보제는 꼭 필요하고, 그래도 누락되는 경우는 보완적 조치로 면밀히 발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국제아동인권센터, 국내입양인연대 등 아동·여성 등 인권 단체들의 연대인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출생 신고가 안 된 아동을 지자체 등이 직권으로 기록하는 출생통보제가 진작 마련됐다면 미등록 아동 살해 등 사건이 뒤늦게 밝혀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기관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해서는 의료계의 협조가 필수인데, 정부는 의료기관의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논의해서 동의를 이끌겠다는 입장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출생통보제와 관련해 의료계와 협의가 원만히 진행되고 있다"며 "협의를 마치는 대로 법사위를 거쳐 빠르면 이달, 늦어도 7월에 본회의를 통과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회적 여론 형성이 어느정도 돼 있는 출생통보제와 달리 보호출산제는 상대적으로 '뜨거운 감자'로 평가된다.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여성이 아동 살해·유기 등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고 병원에서 익명 출산 함으로써 보호할 수 있다는 찬성론과, 양육 포기를 조장하고 아동에게 친부모 정보를 숨겨 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대론이 갈린다.
한국아동복지학회 부회장인 박명숙 상지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원하지 않는 출산, 양육이 불가한 경우에 대응해 익명 보호출산제로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런 제도가 부재하니 민간 단체의 베이비박스가 합법·불법성이 모호한 채 묵인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구권과 다르게 한국은 사회적 편견이 심해 익명 보호출산제가 생기면 위기 임산부를 비밀 출산으로 숨어버리게 하고, 그에 따른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야기할 것"이라며 "나중에 부모를 찾고 싶어 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 침해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도 "보호출산제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 권리를 영구히 박탈하는 것"이라며 "어떤 임신·출산은 '은폐돼야 할 일'이라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모욕·차별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더 근본적으로는 아이를 낳아 양육할 수 있도록 국가·사회적 지원을 강화하고 편견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봉주 교수는 "국가의 지원을 늘려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역사회의 공공과 민간의 협력 네트워크를 더욱 촘촘히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해서 넘어가게 하고 그 가족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며 "국가의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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