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 ‘반테러 작전’ 선포…푸틴 정권 ‘최대 위기’ 직면

정의길 2023. 6. 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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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용병그룹 바그너 수장 ‘무장 반란’…“군 기지 장악”
,러시아에서 무장반란을 일으킨 용병 집단 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 자신들이 장악했다고 주장하는 러시아군 본부가 있는 로스토프나도누 시내에서 군 차량들이 보이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방식을 놓고 러시아군 지도부와 마찰을 빚어온 용병 집단 바그너(와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 전력의 중요한 위치를 점한 와그너 그룹이 무장 반란을 일으키면서 러시아는 개전 이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프리고진은 24일(현지시각) 새벽 러시아군 지도부에 복수하고 처단하겠다며 자신의 부대를 우크라이나로부터 러시아 본토로 진입시킨 뒤 남부의 군 기지를 장악해 그 안에 있다고 밝혔다. 프리고진이 주도한 무장 반란에 어느 정도의 병력이 동원됐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에 맞서 수도 모스크바와 주변 지역에 “반테러 작전 체제”를 선언하고는 대비에 들어갔다. 러시아 국가반테러위원회는 이날 성명에서 “모스크바시 및 모스크바 지역 영내에서 테러 행위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반테러 작전 체제가 시작됐”고 밝혔다. 사실상 모스크바에 비상사태가 선언된 것이다.

프리고진은 이날 새벽 텔레그램에 올린 메시지에서 “우리는 본부 안에 있고, 지금은 오전 7시30분이다”며 “비행장을 포함한 로스토프의 군 기지들이 통제 속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오지 않으면 로스토프나도누를 봉쇄하고 모스크바로 진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지칭한 기지는 러시아 남부의 로스토프나도누의 러시아군 기지 사령부이다. 이곳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병참 기지 역할을 해왔다. 프리고진은 “우리가 비행장을 통제해 공격 비행기들이 우리(와그너 그룹)가 아닌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이번 무장 반란의 명분으로 러시아군 지도부가 자신의 전투원을 공격해서 죽였다는 이유를 들었다.

프리고진은 이어 러시아 국민들에겐 국영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을 믿지 말라며 “그들은 와그너 그룹이 간섭해서 전선이 무너졌다고 말한다”며 “전선이 무너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고 말했다. 나아가 “엄청난 영토가 상실됐다. 병사들은 최고 지도부에게 보여주는 문서에서보다도 3배, 4배나 더 많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은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이 “우리가 여기에 접근하는 것을 보고는 도망갔다”고도 말했다.

프리고진은 자신의 부대원들을 러시아로 진입시킨 뒤 모스크바로 향해 행군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 지방 관리들을 인용해 군사 차량 행렬이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남부에서 시작되는 주요 고속도로를 이용해 모스크바 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전했다. 관리들은 주민들에게 이 군사 차량 행렬을 피하하고 경고했다.

이날 반란의 조짐이 드러난 것은 전날 밤부터였다. 프리고진은 23일 늦은 밤 텔레그램에 러시아군이 로켓포 등으로 공격해 자신의 전투원들이 죽었다며 “이 나라의 군 지도부가 자행한 악을 중단”시키겠다고 복수를 다짐했다. 이후 24일 새벽 2시에 텔레그램에 올린 메시지에서 자신의 부대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로 들어갔다고 밝혀, 본격적인 무장 반란에 들어갔음을 알렸다. 그는 부대원들이 고급 간부에 대항해 “끝까지 갈” 준비가 됐고, 자신을 막는 어느 누구도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행동은 쿠데타가 아니라면서 “우리는 2만5천명이고, 혼란이 이 나라에서 왜 일어났는지를 알아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와그너 그룹이 가는 길에 있는 검문소나 공군력을 파괴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우리 청년들을 파괴하고, 수십만명의 러시아 병사들의 목숨을 파괴한 자들은 처벌받을 것이다”며 “나는 어느 누구도 저항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에 러시아 국가반테러위원회는 프리고진에게 불법적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면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관련 조사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이고리 크라스노프 러시아 검찰총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프리고진의 입건 사실을 보고했다고 전했다. 연방보안국도 프리고진의 성명들은 “러시아 영토에서 무장 내란의 시작을 촉구하고 그의 행동들은 친파시스트인 우크라이나군과 싸우는 러시아군의 등에 칼을 찌르는 것이다”고 비난했다. 이어 “우리는 (와그너 그룹) 전투원들이 만회할 수 없는 실수를 하지 말고, 러시아 인민에 대한 어떠한 강압적 행동도 중단하고, 프리고진의 범죄적이고 반역적인 명령을 수행하지 말고, 그를 체포하는 대책을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세르게이 수로비킨 우크라이나 주둔 러시아군 부사령관은 “적은 우리의 내부 정치상황이 악화하기를 단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며 “너무 늦기 전에 러시아연방 인민들의 대통령의 의지와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며 “부대들을 중단시켜서 기지로 돌려보내라”고 촉구했다. 수로비킨은 프리고진이 존중을 표했던 러시아군 지휘관이다.

지난 2010년 9월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학교 급식 공장을 방문해, 이 공장의 운영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함께 시찰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용병기업인 와그너 그룹을 창업하기 전에 급식 및 식당 사업을 했다. AP 연합뉴스

프리고진이 이끄는 와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때부터 참전해, 지난 5월 동부 전선의 최대 격전지였던 된 바흐무트를 점령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프리고진은 바흐무트 전투가 장기화되는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 국방부와 군 수뇌부가 충분한 탄약 등 무기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고 있다며 공개적인 불만을 쏟아내 왔다. 또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 지도부가 무능하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와그너 그룹에 대한 지원과 보급이 개선되지 않으면 바흐무트에서 철수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바흐무트 전투가 끝난 뒤 쇼이구 장관은 용병 등 모든 비정규군에 국방부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해, 와그너 그룹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조처를 내렸다.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 국방부의 방침을 지지한다고 밝혀, 프리고진이 결국 푸틴의 신임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군 지도부를 비판하면서도 푸틴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던 프리고진은 23일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푸틴의 주장도 거짓말이라고 비판하며 선을 넘었다.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의 반격 공세를 러시아군이 완전히 격퇴하고 있다는 푸틴의 발표를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러시아가 영토를 상실하고 러시아군이 패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내놓은 지 몇 시간 만에 무장 반란에 들어갔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 내의 무장반란 사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즉각 러시아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백악관 대변인 밝혔다.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등 서방 언론들도 그의 무장 반란을 ‘가능하지 않은 시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서방 쪽에서 주목해온 러시아 지도부 내의 분열이나 반푸틴 쿠데타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서방에선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의 전황이 지지부진하면 내부에서 불만과 균열이 생기고, 이는 푸틴 정권의 붕괴로 가는 길을 닦을 것이라고 기대해 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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