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체 탈의 운동했다고… 경찰, 우르르 둘러싸고 신원조회 논란
야외에서 상의를 벗고 조깅을 하던 남성이 경찰에게 주의 조치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노출이 심하지 않고 불법 소지가 없는데 민원이 접수됐다는 이유만으로 경찰들이 신원조회를 진행하는 것은 과도한 대응이라는 반응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소동은 지난 22일 오후 4시쯤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낙동강 인근 다리에서 발생했다. 당시 래퍼 빅베이비(이소룡)는 날씨가 좋아서 상의를 탈의한 채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 4명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웃통을 벗었다는 걸 문제 삼으며 경고했다고 한다. 경찰들은 그에게 구체적인 혐의는 설명하지 않은 채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빅베이비의 신원을 조회하고 옷을 입으라고 당부한 뒤 떠났다고 한다.
당시 상황은 빅베이비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생중계됐다. 영상을 보면, 상의 탈의에 대해 지적을 받은 빅베이비가 “이게 왜 불법이냐”고 따져 묻자, 한 경찰은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있다. 저희가 주의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빅베이비는 “여기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이런 데서 옷도 벗을 수도 있는 거죠”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경찰은 “과다노출로 단속될 수 있다”라며 신분증 제출을 요구하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었다. 빅베이비는 경찰의 요구에 응하면서도 “여기 남들이 어디있나. 지금 경찰이 더 많다”고 반응했다. 영상을 보면 현장에는 인적이 드문 상황이었다.
이후 또 다른 남성 경찰이 빅베이비의 손을 잡아 끌었다. 이에 그는 “날이 좋아서 웃통 벗을수도있지. 여기가 북한이냐”고 했다. 이어 “(태닝을) 뭘 집에 가서 하나. 태양이 집에 있나”라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집으로 간다고 돌아서는 빅베이비에게 “바지 올려라. 옷을 입고 가야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빅베이비는 24일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데 경찰에게 이름하고 거주지, 주민번호를 대야하고 신원조회를 당한 것이 황당하다”면서 “이런 작은 부분까지 경찰이 개입해서 시키는대로 한다면 우리의 자유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평소에도 이곳에서 종종 상의를 벗고 산책이나 운동을 즐기지만, 경찰이 출동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빅베이비는 “왜관읍에 어르신들도 많은데 오히려 제가 운동할 때 ‘몸이 좋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사건 이후 경찰쪽에서 별다른 통보는 없었다고 한다.
온라인에도 경찰의 조치가 과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노출이 과하지 않은데 지나치게 자유를 침범한다” “웃통을 벗었다고 출동하면 해수욕장 인근 장소는 죄다 단속 대상이냐” “옷 벗고 조깅하는 외국인들 어리둥절하겠다” “혐의가 도대체 무엇이냐”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영상에서 민원을 접수하고 출동한 경찰이 혐의나 문제의 소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다. 한 네티즌은 “신고가 들어왔다고 모두 문제인가. 문제의 소지가 없으면 경찰이 오히려 민원인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왜관지구대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면 기본적인 내용을 확인해야 해서 출동해 신원조회를 한 것”이라며 “주의를 준 건 아니고, 당시 나들이 나온 가족들도 있고 사람들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 협조를 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상의를 벗고 운동한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는 없다고 했다. ‘빅베이비의 상의 탈의가 불편 하다는 민원 접수가 많았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민원 접수는 1건”이라고 답했다.
2015년에도 한 남성이 일광욕을 하려고 상의를 벗은 일을 두고 경찰이 범칙금을 부과해 위헌 시비가 붙기도 했다. 당시 남성 A씨는 아파트 앞 공원에서 일광욕을 하기 위해 상의를 벗었다가 과다노출이란 이유로 범칙금을 부과받았고, 이를 납부하지 않았다. 경찰은 A씨에 대한 즉결심판을 청구했고 법원은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2013년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의 과다노출 기준은 ‘여러 사람 눈에 뜨이는 곳에서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로 규정했다. 이 남성은 위헌소송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2016년 이같은 과다노출 조항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고, ‘가려야 할 곳’의 의미도 파악하기 어렵다”며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또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은 사람마다 달리 평가될 수밖에 없는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부분”이라고도 했다.
이에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라는 내용과 ‘성기·엉덩이를 노출했을 때’라는 조항을 추가하는 법 개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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