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대화 하자면서 '뺨 때리는' 미국…속내가 뭘까
미국과 중국, 세계 최강국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나라에게 두 나라 관계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절대 피할 수 없는 지정학적 환경 요소입니다. 탈냉전 이후 미중 관계가 나쁘지 않던 시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기본 틀 아래 우리나라는 적지 않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급성장으로 미국이 중국을 유일무이한 패권 경쟁국으로 규정하면서 사정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안보와 경제, 결코 양자택일이 불가능한 두 가지 사안을 놓고 사실상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충돌 위험 속 대화 물꼬 트는 미중
그렇다고 미국이 절대 우위에 있는 건 아닙니다. 제조업에서부터 AI 등 첨단산업,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중국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 자체가 그런 불안감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군사적 대치는 실제 양국 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단 점에서 미국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지점입니다. 타이완 문제에 미국이 적극 개입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현상 변경은 안 된다'는 어디까지나 수세적 입장입니다.
중국발 '정찰 풍선'…미국발 '독재자 발언'
애초부터 현안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는 건 서로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라 실망할 것도 없었고 어쨌든 블링컨 장관 방중을 계기로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미국을 방문하기로 하는 등 소통의 끈은 이어가는 계기가 됐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연 대화 국면은 곧 벽에 부딪쳤습니다. 블링컨 장관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영국을 거쳐 아직 귀국하기 전에 사달이 난 겁니다. 바로 시 주석을 향해 '독재자'라고 표현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발언의 전체적인 맥락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현지시간 20일 자신의 대선 모금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문제를 언급하면서 지난 2월 정찰 풍선 사태를 꺼냈습니다. 정찰 풍선 격추 당시 시 주석이 매우 언짢아했던 건 풍선이 거기 있다는 걸, 그러니까 미국 영공까지 들어온 걸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풍선은 미국으로 가선 안되는 것이었지만 바람에 날려 경로를 벗어났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찰 풍선 사태가 터지자 기상 관측용 풍선으로 의도적으로 미국 영공을 침범한 게 아니란 중국 측 설명을, (기상 관측용이란 점만 빼고) 사실상 수용한 거나 다름 없는 말이었지만 시 주석이 언짢아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무엇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것은 독자재들에게는 큰 창피"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됐습니다. 중국은 즉각 발끈했고 중국 외교부와 주미 중국대사, 대사관이 총동원 돼 전방위 압박에 나섰습니다. 즉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결과를 감당해야 할 거란 경고까지 던졌지만 미국 반응은 한마디로 '그게 뭐?'였습니다.
대화 손 내밀면서 중 두들기는 미…속내 뭔가
물론 물리적 충돌만 아니라면 경쟁자로서 중국을 향해 할말은 하겠다는 외교 노선의 연장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미국은 중국에 늘 대화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첨단 기술이나 수출 통제, 별도 공급망 구축 등 중국이 껄끄러워 할 일들을 동시에 밀어 붙였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대화하자면서 뺨 때리는 격일 수 있습니다. 강대국 간 관계 설정에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들의 이런 행동이 우리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번 블링컨 장관의 방중만 해도 우리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미중 간 관계 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긴장 완화를 통해 양국 사이에서 숨 쉴 공간을 찾거나 연일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 문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비록 미국 측에서 이런 입장을 어느 정도 전달한 걸로 알려졌지만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는 상태라면 의미가 있을 리 없습니다. 이번 독재자 발언 논란으로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가진 중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또 그 불똥이 우리에게 어떻게 튈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향해 대화의 손을 계속 내밀면서도 정작 뭔가 타협점을 찾기 보다 계속해서 중국을 두들기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기후 변화나 마약 퇴치 같은 국제적 과제와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협력할 건 하겠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지만 어차피 승자 독식인 패권 다툼에서 애초 양보 의사가 없는 두 나라에게 타협이란 게 가능한지 의문이기는 합니다.
미국이 말하는 '중국과의 대화'가 공존을 위한 타협점 찾기가 아닌 상호 괴멸로 이어질 수 있는 '전쟁 방지용 안전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우리나라도 다른 대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양분된 지정학적 환경 못지 않게 더 걱정스러운 건 우리 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친미'냐 '친중'냐 하는 식의 상호 비방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를 떠나 자유-공산 진영으로 나뉘어 대리전까지 치렀던 우리나라가 되풀이할 일은 아닙니다.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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