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를 끌고 거리로 나온 이들···“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책과 삶]
‘사회적·정치적으로 인정하라’는
당사자들의 ‘매드 프라이드’까지
‘광기’를 둘러싼 치열한 쟁점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지음, 송승연·유기훈 옮김|오월의봄|572쪽|2만9000원
지평선으로 가득 찬 눈, 암석들 틈 위로 떠오르는 일출의 윤곽, 그리고 수많은 이해의 실타래들이 갈라지는 프랙털과 같은 심장으로 나는 솟아올랐다. 이 순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환희와 희열의 순간을 묘사한 듯한 이 문장은 아름답다. 다음에 오는 문장은 이렇다. “나는 이런 순간들이 병적인 측면으로 여겨지지 않길 바랐으며, ‘조증’이나 ‘망상’과 같이 이런 경험들을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보기 싫은 꼬리표를 붙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안정된 상태’를 얻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없애고 싶지 않았다.”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은 잭스 맥나마라의 글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단체인 ‘이카루스 프로젝트’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맥나마라는 자신이 조증 상태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광기’의 순간 경험하는 것은 고유하고 특별하다. 이카루스 프로젝트는 광기를 ‘양날의 검’이라고 설명한다. 정신적 고난과 사회적 어려움 등을 야기할 수 있지만, 창조성·잠재력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아름다움에 접근할 수 있는 감수성, 기질, 성향 등을 부여받았어요. 하지만 이는 또한 극도로 고통스러울 수도, 파괴적일 수도 있죠. 이 위험한 선물을 어떻게 가꾸어갈지 배우는 것은 당사자로서 우리가 갖는 책임이에요.” 이들에게 광기는 ‘위험한 선물’이다.
‘미친자’들의 정체성을 인정하라···매드 프라이드
정신과 치료, 약물, 전기자극, 폐쇄병동…. ‘정신질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환각과 환청, 망상, 극단적인 기분의 전환 등이 ‘증상’이며 조현병, 양극성 장애 등의 ‘진단명’을 갖는다. 19세기에 출현한 정신의학 이후 광기는 치료와 교정의 대상이었다. 때론 강제 수용돼 치료라는 명목의 학대와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다. 반대편에는 ‘정신질환’이라는 낙인에 맞서 자신들의 경험과 언어를 되찾고자 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운동이 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운동이다.
‘매드 프라이드’는 낯선 말이다. 1970년대 여성·흑인·성소수자들의 민권운동에 영향을 받아 시작한 ‘매드 프라이드’ 운동은 광기를 치료 및 교정해야 할 병리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낙인에 맞섰다. 1997년 최초로 결성된 매드 프라이드는 매년 7월14일을 국제 매드 프라이드 데이로 지정해 거리로 나와 다양한 예술 전시, 공연, 퍼레이드 등을 벌인다. 한국에서도 2020년 10월 ‘매드 프라이드 서울’ 행사가 열렸다.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 ‘헤이유진’이란 밴드로 공연하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매드 프라이드의 목표는 광기에 대한 사회문화적 존중과 인정을 이끌어내며 광기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미국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가 주디 체임벌린은 ‘정신장애차별주의(mentalism)’란 용어를 만들어 차별적 체계를 문제 삼았다. “매드 프라이드는 정신의학의 역사와 광기의 경험 속에서 우리가 느끼도록 강요받는 수치심과 맞서고, 정신의료제도와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마주하는 억압에 저항한다. 광인인 우리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이 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이에게 터무니없는 농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도발적이며 급진적이다. 인간과 정상, 합리성 등 총체적 세계관에 의문을 던지는 동시에,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는 광기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어떤 요건들이 필요한지 세밀하게 논증하고 탐구해나간다. 당사자들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기존의 의료적 관점에도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치밀한 논의를 진행해나간다. 광기에 대한 차별의 역사부터 매드 운동의 태동과 발전, 헤겔의 <정신현상학>,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논의를 돌다리를 두드리듯 차근차근 진행해나간다. 저자는 흑인 민권운동, 성소수자운동, 장애인운동과 비교·대조하며 광인들의 주장을 검토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지만, 중간에 멈추는 것도 쉽지 않다. 자신을 ‘흑인’이라고 믿는 백인, 영혼과 대화하고 다른 목소리를 듣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철저히 이성적·논리적으로 논의를 진행해나가는 저자의 여정은 흥미롭고 아름답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서사가 존재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지향점이다. 광기와 사회를 화해시키는 것은 가치 있는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드 운동의 요구는 낯설지 않다.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의 인권운동 역시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타당한 삶의 방식으로 인정하라는 요구였다.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멸칭이었던 ‘퀴어’의 의미를 전복해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웠던 성소수자들처럼, 매드 운동은 ‘광기(mad)’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적극 받아들이며 전유한다. 정신병, 정신질환 등의 언어를 거부함으로써 ‘매드’라는 언어를 되찾아 기존의 부정적 의미를 전복시키고 ‘미쳤다’는 것을 문화와 정체성의 근거로 내세웠다.
광기는 학대, 차별 등 사회적 문제와 연관,
인간의 다양한 차이의 하나
창조성과 연관된 ‘위험한 선물’
‘매드 포지티브’ 접근법은 부정적이며 개인의 결함으로 여겨졌던 광기를 사회적으로, 긍정적으로 재해석한다. 학대, 차별, 억압, 낙인, 빈곤,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와 ‘정신질환’의 증상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 가족, 사회, 경제, 종교, 교육 시스템 등 외부에 존재하는 잔혹한 문제들을 인지하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화살을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자신의 생물학적 요인에 겨눈다.”
또 다른 전략은 ‘정신질환’이 인간의 경험과 기능상의 다양한 차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광기로 인한 고통은 세계가 이런 차이를 수용하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다. 마지막으로 ‘위험한 선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들은 광기와 창조성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농인들의 ‘농문화’가 좋은 예다. 농인들은 수어를 중심으로 한 농문화를 공유하는 공통적인 삶의 경험을 지닌 언어적 소수자로 스스로를 정체화한다. 이들은 청력 결핍을 결핍이 아닌 긍정적 상태로 인식한다. 그들은 ‘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당사자들이 광기를 정체성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사회가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 인정이 당사자들에게 반영될 수 있을 때 긍정적인 정체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드 프라이드는 “당사자들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존중과 가치를 복원하는 이 사회의 급진적인 문화적·상징적 변혁”이다.
분열된 자아, 일관되지 못한 자아는 ‘정체성’을 손상···
이들의 광기를 ‘정돈’하는 ‘매드 서사’를 통해
광기와 사회의 대화·화해가 필요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망상, 극단적 기분, 수동성 현상(자신의 사고나 행동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주입하거나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것) 등 정신질환과 관련된 현상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근거로 인식된다. 저자는 정체성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자아의 통합성, 자아의 지속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을 흑인이라고 정체화하는 백인 레이철 돌레잘의 예는 흥미롭다. 돌레잘은 전미 유색인지위향상협회 지역지부장을 지냈으며 아프리카학 강사, 블랙라이브스매터 활동가이기도 하다. 유럽계 미국인 백인 여성이지만, 머리를 땋고 피부를 태닝하며 자신을 ‘흑인’으로 생각했다. 그의 부모는 흑인 자녀 4명을 입양했으며, 돌레잘은 이들을 돌보며 흑인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돌레잘이 망상을 가졌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돌레잘은 자신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아니지만 흑인 정체성을 가졌음을 명확하게 주장했다. “인종은 생물학적 실재가 아니다. 인종은 서로 다른 집단들 사이에서 권력과 특권을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층적 시스템이다.” 돌레잘은 인종이란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관념에 기반해 ‘흑인’에 대한 논쟁적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체성일 뿐 ‘실패한 정체성’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환청 등에서 보이는 분열된 자아, 불연속적인 자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푸코는 일찍이 ‘정신질환의 고요한 세계’에 대해 말하며 “이성의 인간과 광기의 인간 사이에 공유된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공유된 언어를 만들기 위해 ‘광기를 정돈’해서 세상에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매드 서사’다.
매드 서사는 조현병 등에 나타나는 자아의 불연속성은 ‘영적인 변화’로 설명하며, 양극성 장애에서 보이는 극단적 기분의 변화는 창조성과 독특한 관점의 잠재력을 지닌 것과 연관된 ‘위험한 선물’로 설명한다. 또 환청에 대해서는 ‘치유의 목소리’로 설명한다. ‘목소리 듣기 운동’은 서구에서 성공을 거뒀다. 목소리 들림을 치료해야 할 정신병리학 현상으로 간주하는 대신, “삶의 문제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나타내는 ‘메신저’ ”로 여기며 “사회적·정서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긴 논의 끝에 저자는 말한다. “광기가 매드 서사에 근거해 정돈된다면, 결론적으로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인정의 범위 안에 들어올 수 있다.”
광기에 대한 인정은 사회가 더 다양화하고 풍부해지는 방향으로 한발 내디디는 것이다. “질병과 병리를 넘어 광기의 사회적 의미를 다양화함으로써, 일반적이지 않은 경험, 심리적·행동적 측면의 여러 차이들을 좀 더 폭넓게 수용할 수 있다.” 다양한 매드 서사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문화적 레퍼토리’가 될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풍부한 문화적 레퍼토리를 창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목표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광기와의 대화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는 사회에 광기를 초대해 대화를 나누기 위한 훌륭한 가이드라인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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