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듀오 신박 10주년…네 손으로 들려준 왈츠와 어린이 세계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노 듀오 신박이 올해 결성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22일 금호아트홀에서는 피아니스트 신미정과 박상욱이 앙상블을 이룬 듀오 신박의 연주회가 열렸다.
2013년 결성된 신박은 ARD 국제 콩쿠르, 슈베르트 국제 콩쿠르 등을 석권한 뒤 국제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노 듀오다. 오스트리아 빈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신박은 매년 내한할 때마다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상대적으로 생소한 피아노 듀오의 세계를 꾸준히 알리고 있다.
이번 공연은 기획의 측면에서도 짜임새가 있었다. 전반부는 왈츠, 후반부는 어린이를 주제로 삼았다. 특히 후반부에는 드뷔시의 '어린이 차지' 중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와 이 작품에 영향을 받아 나온 포레의 연작 '돌리 모음곡'을 연결해 연주했다. 또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와 그 자극으로 작곡된 비제의 '어린이 놀이'가 한 세트를 이뤘다.
이 가운데 비제의 '어린이 놀이'는 실연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명곡이다. 지난 2021년 발매한 음반 '하다'에서 차이콥스키 편곡의 1812년 서곡, 직접 편곡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 서곡을 선보인 것처럼 이날 공연에서도 듀오 레퍼토리를 넓혀가겠다는 신박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신박은 빈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앙상블답게 빈풍의 유연한 음악을 인상적으로 선보였다. 첫 곡 슈베르트의 '20개의 렌들러'에서는 가곡뿐 아니라 춤곡의 대가이기도 했던 슈베르트의 본능적인 매력을 한껏 살려냈다.
흔히 렌들러는 왈츠의 전 단계로 알려진 민속춤으로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등지에 널리 퍼져 있다. 슈베르트는 본래 소박한 이 춤을 재료로 오스트리아인 특유의 유희적 본능과 듣는 이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의외성을 보인다. 신박은 빈 왈츠를 연상케 하는 멈칫하는 움직임, 타격의 세기와 빛깔을 조절하는 예민한 감수성으로 이 짧은 곡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두 번째로 들려준 브람스의 '왈츠' 역시 매력이 넘쳤다. 브람스의 곡은 빈 토박이인 슈베르트보다는 보다 구조적이고 음향적으로 단단하다. 근본적으로 짤막한 슈베르트의 렌들러보다는 추동력이 강하고 보다 확장된 음역에서 나오는 깊은 울림과 무게감 있는 서정성을 갖고 있다.
신박은 세컨도(피아노 낮은음 쪽에 앉는 사람) 파트에서는 저음을 두껍게 하고 프리모(피아노 높은음 쪽에 앉는 사람) 파트에서는 노래하는 성격을 잘 살려 입체감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특히 6번 곡처럼 꼬리물기 식의 날랜 움직임이나 15번 곡처럼 고요한 노래 사이의 대비도 훌륭하게 표현됐다.
신박의 연주에는 빈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 이상의 개성이 있다. 다른 듀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인의 신명 혹은 흥이 그것이다. 신박은 순간적인 호흡 변화에 능하고, 음향에 다채로운 굴곡을 부여해 생기를 입힌다.
1부의 마지막 곡은 막스 레거의 '여섯 개의 왈츠'였다. 레거의 왈츠에서는 인상주의와 세기말적인 화성이 두드러지는데 신박은 이를 잘 포착했다. 보다 대담한 진행, 다이내믹한 대비, 차별화된 타건 등으로 앞선 곡들과는 다른 음향을 들려줬다. 덕분에 관객들은 슈베르트, 브람스, 레거에 이르는 낭만 시대 왈츠의 변천을 귀로 따라갈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어린이를 위하거나 어린이에 관한 작품들이 연주되었다. 신미정과 박상욱은 각각 한 편의 솔로와 해설을 번갈아 맡았다. 해설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에 충분했고, 드뷔시(박상욱), 슈만(신미정)의 독주곡 또한 작품의 개성을 십분 전달한 좋은 연주였다. 1부가 독일, 오스트리아 작품으로 채워졌다면 2부의 메인 두 곡은 모두 프랑스 작품이었다.
포레의 '돌리 모음곡'에서 신박은 두 피아니스트가 주고받는 뛰어난 호흡에 장난스러운 제스처를 곁들였다. 다만 전곡을 여는 첫 곡 '자장가'와 다섯번째 곡 '상냥함'이 음향적으로 제1부의 작품들과 차별화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꿈을 꾸는 듯한 프랑스적 감수성 대신 건실한 브람스적 사운드가 여전히 강했다.
비제의 '어린이 놀이'는 해석, 음향, 의외성, 다양성 측면에서 최상의 연주였다. 이 작품은 '카르멘'을 연상시키는 스페인적 음향, 당당한 행진곡풍의 진행, 갖가지 장난감에 대한 음악적인 묘사가 인상적이다. 특히 6곡 '탬버린과 트럼펫', 마지막 12곡 '무도회' 등에서 실감 나는 묘사력과 재기발랄한 리듬, 생생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번 음악회는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친밀한 느낌을 줬다. 신박은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전달했다. 베이스 바리톤 안민수와 함께 선사한 슈베르트의 '마왕'의 포핸즈(두 사람이 한 대의 피아노를 연주) 버전, 라벨의 '거위 아주머니' 등 앙코르까지 신박은 진정한 앙상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더없이 진실하게 알려줬다.
lie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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