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내가 틀릴 수 있다' 인정 못하는 이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 옳을 거라는 과도한 확신을 갖는다. 다른 사람들은 뭘 잘 모르고 종종 틀린 말을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신은 뭘 모르거나 틀렸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개인차가 존재해서 무조건 자기 생각이 맞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 증거들에도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두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특성을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이라고 한다.
연구들에 의하면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의견과 같은 의견보다 다른 의견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의견이 다른 사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며 어떤 주장에 신뢰할만한 근거가 있는지 또한 중요하게 고려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은 양질의 근거를 토대로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가짜 뉴스에 덜 휘둘리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생각이나 믿음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모습을 덜 보이는 등 서로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며 싸우는 각축장 같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 같은 존재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 겸손을 키울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보다 이제라도 올바른 답을 알게 되었다는 데에 더 기뻐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용납하지 못하게 된 걸까.
한 가지 단서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그것에 한정해서 생각하는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틀렸고 마치 내 지적 능력 전체가 시험대에 오른 것처럼 확대해석 하는지다.
연구들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 자신의 가치가 어디에 얼마나 달려있다고 생각하는지(예를들어 지적 능력, 외모, 사람들의 인정 등)에 따라 똑같은 실패 경험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지적 능력에 자신의 가치를 몰빵해서 지각하는 사람들은 문제 몇 개를 틀린 것에 주관적 자기가치감(=자존감)이 크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자기 자신의 가치가 고작 삶의 몇 가지 영역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패 경험에 의해 자존감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또는 자신의 흠결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무언가를 틀리는 경험을 자기 존재 가치에 대한 위협으로 확대 해석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에게는 어떤 것을 잘못 알았을 때 '그것'을 틀린 정도의 일이 '내가' 틀린 문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잘못 알았다면 해당 지식을 바로잡으면 된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 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어떤 지식 하나를 바로잡는 것은 간단하지만 틀린 나, 부족한 나의 지적 능력 전체를 고치는 것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후자의 경우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빠득빠득 우기며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애초에 부정하는 것이 더 손 쉬운 해결법이 된다.
로체스터대(University of Rochester)의 심리학자 해리 레이스(Harry Reis) 와 동료들은 작은 흠결도 자아에 대한 위협으로 지각하는 과도한 자기 방어를 낮추는 방법들이 지적 겸손도를 높여줄 것이라고 보았다.
심리적 안정감의 중요한 원천이 되는 연인으로부터 관심 받고 받아들여지고 상냥하게 대해진 경험을 떠올려 보게 한 조건에서 반대로 관심을 주지 않고 차가운 연인을 떠올린 조건에 비해 그럴 줄 몰랐으면서 그럴 줄 알았다고 우기는 후견지명 효과나 자신이 더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비중을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덜’ 나타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몇몇 기준에 자신의 가치를 거는 현상 역시 일면 ‘타인의 인정’을 바라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다. 자존감의 사회적 계기판 이론(sociometer theory of self-esteem)에 의하면 자존감은 자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계기판이다.
따라서 몇몇 조건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사랑과 관심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존재가 있을 때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방어적인 태도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비슷하게 어렸을 때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했거나 부모로부터 사랑과 안전감을 받았던 경험을 떠올린 사람들이 회피 또는 불안 애착을 형성하거나 떠올렸던 사람들에 비해 더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나는 항상 옳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내가 항상 옳았다고 느껴진다면 주변 사람들이 내 억지를 참아주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을 기억하자.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곧 내 존재 의의를 무너트릴 정도의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면, 무조건 내가 옳다고 우기기보다 내가 틀렸을 때에도 나를 따듯하게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건설적인 방법임을 기억하자.
Reis, H. T., Lee, K. Y., O'Keefe, S. D., & Clark, M. S. (2018). Perceived partner responsiveness promotes intellectual humility.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79, 21-33.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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