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 여신 ‘루비 주사위’가 땅에 떨어져 꽃이 된 디기탈리스[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한여름 피는 홍자색 황색 분홍색 흰색 다양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종이 차례대로 매달린 듯한 독특한 꽃 모양과 선명한 꽃 색깔 때문에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원산지가 헝가리, 루마니아, 발칸 반도인 탓에 그리스 로마신화 등 서양의 문화와 밀접히 연관된 꽃이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아내 헤라가 올림푸스 신전에 머물지 않고 구름 위에서 루비 주사위를 던지며 노는 게 못마땅했다. 헤라가 가지고 놀던 루비 주사위가 땅에 떨어지자 제우스는 그 주사위를 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꽃이 바로 디기탈리스다. 디기탈리스는 루비 주사위처럼 영롱하게 광채를 발한다.
현삼과에 속하는 디기탈리스는 다년생 초본으로 키가 1m 정도까지 곧게 자라고 식물 전체에 짧은 털이 있다. 잎에는 양면에 주름을 가지고 있고, 가장자리에는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는 게 특징이다.꽃은 7∼8월에 피어 꽃잎은 흰색 분홍색 보라색 등으로 다양한 색상을 가지고 있다. 꽃잎 안쪽에 주근깨처럼 꽃잎보다 짙은색으로 반점이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식물의 속명인 디기탈리스(Digitalis)는 라틴어 ‘장갑의 손가락’을 뜻하는 디기투스(Digitus)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여우가 밤에 사냥을 나갈 때 디기탈리스라는 꽃을 장갑으로 끼고 나갔다고 하여 ‘폭스글로브(foxglove)’라는 영어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꽃 모양이 손가락 끝 모양에 딱 들어맞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폭스글로브는 ‘여우의 장갑’‘여우의 음악’‘여우의 방울’이라는 별명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영국에서 여우들이 집 안까지 침입해 닭장 안에 있는 닭을 훔쳐가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는데 닭을 지키려 울타리 치고, 종을 달고, 개를 준비해도 해결되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집 안으로 들어와 닭만 훔쳐가는 여우들 모습을 보며 그 시절 마법을 가지고 있다고 믿던 ‘마녀의 꽃’인 디기탈리스의 꽃을 여우들이 신발로 신어 집 안에 소리 없이 들어와 일을 저지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갑자기 디기탈리스 꽃 신발이 등장하는데 , 이는 사람들에게 원한이 있는 요정이 디기탈리스 꽃을 여우의 발에 신겨주어 여우가 집안에 들어와 닭장 주위를 돌아다녀도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 그림 속에서 가셰 박사가 가지고 있는 꽃이 바로 디기탈리스이다. 당시 고흐의 힘들었던 심리 상태가 반영돼 그린 꽃으로 추정된다.
디기탈리스에는 디기톡신과 디톡신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 디기톡신과 디톡신이 산소 소비의 증가 없이 심장 수축 세기를 증가시키고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등 심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고흐는 생전에 간질과 조울증으로 꽤나 고생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의 주치의는 고흐의 질병 치료를 위해 디기탈리스에서 추출한 약을 처방했다고 한다. 본인의 힘든 생활을 잠시나마 도와주는 꽃이었기에 작품에 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나온다.
디기탈리스의 잎은 심장병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다. 디기탈리스는 유럽에서 1600 년대에 민간약으로 심장병과 부종치료에 사용하던 풀이 강심 이뇨제의 디곡신 성분이 발견돼 민간약이 현대의약품으로 등장한 효시가 됐다고 한다.
디기탈리스는 잎이 우글쭈글한 주름에 잔털이 있으며 이 잎을 약용에 사용하는데 생약명은 모지황(毛地黃). 모지황은 맛이 쓰고 약성은 찬 성질에 약간의 독성이 있으며 장기간 또는 많이 먹으면 체내 축적돼 중독되므로 며칠간씩 간헐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강심배당체로서 강심 이뇨의 효능이 좋고 심장쇠약 심장기능부전 및 각종 심장질환을 치료하는 필수적인 심장약이다. 디기탈리스는 독성이 매우 강한 식물이므로 절대 전문가의 상의 없이 사용해서는 안된다.
디기탈리스의 꽃말은 ‘화려’‘청춘’‘열애’‘나는 당신을 향한 애정(사랑)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꽃을 선물하며 꽃말을 알려주면 그 자체로 ‘사랑의 마법’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글ㆍ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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